Dala. 가이드 북에 잘 나오지 않는 양곤.
양곤(Yangon)이 옛 버마의 중심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건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양곤 강의 존재 때문이었을 겁니다. 옛 수도 만달레이가 이라와디 강으로 연결되기는 하지만 너무 멀지요. 그래서 영국인들은 19세기에 바다에 가까운 어촌이었던 이 곳에 건물을 올리고 사각형 구획 정확한 계획도시를 만들고 이 곳에 인도인들을 이주시켜 버마를 복속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독재자 네윈이 갑자기 내륙의 네피도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이 강변도시는 미얀마의 수도였습니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늙어가는 영국인들의 유령 같은 건물들 사이에서 고난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지요.
그 양곤 강을 따라 이어지는 오래된 큰 길이 Strand Road입니다. 영국 대사관과 중앙우체국, 유명한 Strand Hotel 같은 건물들이 이 길에서 양곤 강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 가면 늘 하던 대로, 제게 엽서를 써 보낼 생각으로 늦은 오후에 강을 따라 걸어 이 곳에 있는 중앙우체국에 갔습니다. 1월이었지만 건기의 미얀마 태양은 뜨거웠고 엽서를 보내고 우체국을 나와 스트랜드 호텔 앞쪽 카페 쪽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 바로 앞에 낡은 선착장 너머로 꽤 커다란 배가 서 있더군요. 저 배는 어디로 가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육교를 건넜습니다. 달라 Dala. 바로 강 너머의 동네를 왕복하는 배입니다. 이층의 커다란 배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짐을 손에 든 노인들부터 학생들, 아이들까지 온통 양곤 사람들이었지요. 시간표를 대충 보니 한 시간에 여러 번, 계속 왕복하는 배입니다. 저길 가야겠다. 가이드 북은 들고 있지 않았지만 나중에 찾아봤어도 별 설명은 없더군요. 단지 집도 물가도 비싼 양곤에서 살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달라를 설명하는 짧은 글만 있을 뿐입니다. 해가 질 때까지 몇 시간을 저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가 봐야겠다.
표를 사고 부두로 이어지는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넙니다. 터미널 격인 건물과 배 아래에는 먹을 걸 파는 행상들이 있고 무표정한 사람들은 녹슨 로봇처럼 배에 올라 자리를 잡습니다. 퇴근시간이 되긴 좀 이르지만 양곤에서 그날의 일을 끝낸 사람들의 피곤이 묻은 뒷모습을 따라 저도 2층으로 올라가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았지요. 어차피 생긴 게 이상하고 카메라를 든 저는 사람들 눈에 띄게 마련이니 가능한 조용히. 배는 이십여분 강을 가로질러 반대편 터미널에 사람들을 풀어놓습니다. 아무 정보가 없던 저는 그냥 돌아오는 배 시간 정도까지 부두 근처의 식당이나 시장 같은 곳을 대충 둘러볼까 언덕 위로 올라갔지요. 건너편 스트랜드 로드 쪽과 달리 포장도 되지 않은 길엔 수많은 자전거가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부두까지 와서 이 곳에 주차를 하고 양곤 시내로 건너가는 사람들의 자전거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호객하는 택시 - 싸이카(옆에 사람을 태우게 개조된 자전거, 인도의 릭샤보다 말레이시아의 트라이쇼와 흡사한) - 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대중교통이 있을 리 없는 달라 마을엔 교통수단은 오직 자전거. 오토바이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건너오는 미얀마 관광객들이나 저 같은 외국인이 오면 싸이카 기사들이 적극적으로 호객을 합니다. 주로 시간 단위로 흥정을 하고 달라 여기저기를 데려다주는 식입니다. 문제는 이 곳의 싸이카 기사들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 어지간하면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미얀마에서 드문 경우지요. 그만큼 교육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고 외국인이 많이 오지는 않는 곳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버마어로 말을 걸어오는 몇몇 싸이카 기사들을 뿌리치고 있는데 바로 옆 흙바닥에서 대충 만든 네트를 걸어 놓고 ''세팍타크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 얼핏 봐도 공을 차는 자세가 전문가의 풍모를 풍기는, 진짜 선수들입니다. 슬그머니 카메라를 꺼내 들고 한참을 서서 그들의 경기를 봅니다. 서브부터 스파이크(?)까지 하루 이틀 한 실력들이 아니더군요. 사실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을 다녀 봤지만 세팍타크로를 일상에서 실제로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미얀마였습니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는 공원 같은 곳의 경기장에서나 가끔 보였는데 미얀마는 시골 동네 작은 공터에서도 노소가 둥글게 모여서서 플라스틱 공을 능숙하게 차곤 하더군요. 한참 이들의 경기에 빠져 있다 슬그머니 물러 나오자 멀쑥하게 생긴 싸이카 기사 한 명이 다가옵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오, 꽤 괜찮은 영어를 합니다. 거기다 얼마 얼마를 외치는 게 아니라 '내가 달라를 보여주겠다'라고 접근하더군요. 그래, 뭘 보여줄 건데? 니가 시장이나 카페에 가고 싶으면 데려다 줄텐데 아니라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곳을 보여주겠다네요. 관심이 생겼습니다. 얼마에 흥정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낡은 자전거 옆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 정도 주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곳, 달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 들을 수 있었지요.
외국인들 눈에는 강 건너 양곤 시내의 건물들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곳은 그래도 부자동네. 실제로 구도심이 아니라 북쪽 호수변에 몰려있는 부자들의 집은 어지간한 다른 나라의 집들 못지않은 저택들이었고 독일제 일본제 고급 자동차들이 반듯한 길을 메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도 부자들의 삶은 비슷하게 마련이니까요. 이 곳에도 강을 경계로, 좋은 집들이 있는 곳을 경계로 사람들이 나뉘고 있었습니다. 달라에는 원래도 기반 시설이 거의 없었다더군요. 그냥, 양곤에서 일을 얻어야 먹고살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어 마을이 된 곳. 전기, 수도, 배관 시설 같은 걸 정부에서 해줄 리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충 되는 대로 나무로 가건물을 짓고 촌락을 이루어 살았다더군요. 그러다 예전에 큰 홍수가 나서 양곤 강이 범람했을 때 이 곳의 집들은 대부분 홍수에 쓸려 가고 이 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난민이 되었는데.. (싸이카 기사의 말로는) 정부의 부패한 관리들이 이때 거주 서류 같은 것들을 잃은 사람들의 상당수를 다시 등록시키지 않았답니다. 꽤 큰 돈을 마련해 와야 다시 등록해 주었다구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의 상당수는 거주 등록이 되지 않아 교육도, 취업도 '야매'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전기도 대충 끌어 쓰고 수도 대신 연못 물을 정수해서 먹고 있구요. 달라에도 관공서, 사원, 시장, 학교, 상가들이 있는 정상적인 동네들이 있지만 그는 '니가 보여주고 싶은 곳을 보여줘'라는 제 주문에 그 길들 뒤에 있는, '불법'으로 살게 된 사람들의 동네로 갔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 즈음에 자전거를 멈추고 홍수 이야기, 돈이 없어 불법 거주민이 된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맨발의 아이들과 강아지들은 제 앞에서 반쯤 터진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그 옆 웅덩이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저녁에 쓸 흙탕물을 긷고 있더군요. 저를 태우고 다니던 그 자전거 역시 한 달 단위로 업자한테 빌려 장사를 하는데 '사납금' 맞춰 내기도 빠듯하다고. 다시 부두로 돌아오는데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던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내립니다. 등에는 피곤을 잔뜩 지고 있지만 부두에서 기다리는 식구들을 만날 때의 표정만큼은 한껏 밝게. 그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저런 거였지. 출퇴근을 안 한지 오래된 사람에겐 그 표정 하나에도 눈이 가더군요.
아마, 이름을 들었을 텐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짝퉁 나이키 모자를 쓴 그 싸이카 기사는 그냥, 제가 양곤의 번쩍이는 금빛 파고다들만 보고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식당들만 다니다 돌아가서 양곤은 이렇더라~ 미얀마는 저렇더라~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당신이 달라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뭘 해줄 수도 없고 그걸 바라지도 않아. 양곤에 우리 같은 사람들도 살고 있다는 걸 보고, 알게 되는 걸로 괜찮아, 나는. 사진을 찍어도 돼? 그렇게 쉬지 않고 얘기하던 청년은.. 정작 카메라 앞에서는 표정을 짓기가 어색했나 봅니다. 아마.. 우리가 다시 만나긴 어렵겠지만 양곤을 떠올릴 때면 아마 나는 너를 먼저 기억하게 될 것 같아. 양곤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달라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물어볼게. 양곤이 점점 개발되고 좋아질 거라니, 달라도 그렇게 되길 바래. 아까 그 마을의 집 없고 기록도 없는 사람들도. 너도.
미얀마 경제가 발전하고 양곤이 대도시로 거듭난다는 게 빌딩 그늘에 숨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슬프지만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나라의 경험으로도, 다른 '성장한' 아시아의 나라들의 경험으로도 그 '발전'은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 이야기에 가깝지요. 미얀마는 군사독재에선 벗어났다지만 복잡한 국내 정치사정 탓에 주변 나라들과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궁지에 몰린 지도자는 결국 중국에 나라와 국민을 저당 잡히고 손을 내미는 형국이 되어 갑니다. 캄보디아의 훈센처럼 나라를 중국에 가져다 바치고 자리를 보전받는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이 싸이카 기사는 지금쯤 사납금을 내지 못해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자의 마음은 그냥, 안타깝게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수밖에요. 서울엔 장마가 막 끝나고 있는데, 양곤의 여름은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