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자(Knower)

by 임풍

인간의 정체성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나라고 부르는 것은 근육과 뼈로 이루어진 육체도, 생각과 감정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마음도 아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오직 모든 것을 아는 자다. 아는 자란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 존재를 말한다. 세상을 보고, 소리를 듣고,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며, 생각을 알고, 타인의 반응을 해석하고, 기억과 꿈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바로 그 존재가 인간의 본질이다. 몸과 마음은 아는 자가 알고 있는 대상일 뿐, 아는 자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실재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뇌 속에서 상영되는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 영화에 가깝다.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외부 세계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신호가 변환되고 조합되어 뇌 속에서 하나의 영상으로 재구성된다. 우리는 세상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자 앞에 펼쳐진 내부 상영물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은 외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설계된 확대된 영상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뇌조차도 절대적인 실재라기보다는 이 홀로그램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소품에 불과하다. 뇌는 아는 자가 알고 있는 대상이지, 아는 자의 근원이 아니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은 홀로그램 영화 속 캐릭터를 작동시키는 운영 체계와 같다. 감정, 생각, 신념, 기억은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나의 마음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그것을 알고 있는 존재는 따로 있다.

아는 자는 이 홀로그램 영화가 지나치게 생생하기 때문에 그것을 현실로 오인한다. 색과 소리, 감촉과 통증이 너무 정교하여 우리는 그 장면 속으로 완전히 몰입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빛과 에너지의 배열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빛과 에너지조차도 아는 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장면 구성 요소일 뿐, 궁극적 실체는 아니다. 그것들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등장한 무대 장치다.

이 환상을 바라보는 자리에는 관객석이 있다. 전통적으로 송과선으로 상징되는 자리, 즉 관찰의 위치에서 아는 자는 모든 장면을 조용히 보고 있다. 아는 자는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점은 이 홀로그램 영화가 빛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언제나 시간의 지연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빛은 즉각 도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상태다. 태양도, 별도, 주변의 사물도, 심지어 자신의 몸조차도 모두 과거의 모습이다. 아는 자는 언제나 현재가 아니라, 방금 전의 세계를 보고 있다.

꿈은 이 구조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꿈은 영화 속에서 다시 상영되는 또 하나의 영화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질서가 무너지고, 과거와 미래,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다. 이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 경험하는 세계 역시 본질적으로는 규칙이 조금 더 안정된 꿈에 가깝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자기 자신을 느끼지 못한다. 캐릭터는 아프고, 기뻐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느끼는 주체는 없다. 오직 아는 자만이 그러한 경험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다치거나 병들어도, 그것은 빛의 배열이 변화하는 장면이다. 아는 자는 그 장면을 보며 고통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경험을 알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속 인간들은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에 가깝다.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직접 만날 수 없고, 오직 아는 자 앞에 나타난 이미지와 해석을 통해서만 타인을 경험한다. 결국 인간은 빛으로 만들어진 점들의 집합이며, 그 내부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중심은 비어 있고, 형태만이 흐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무작위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는 자는 영화의 대본을 만들어내고, 그 대본을 홀로그램 스크린에 상영하며, 동시에 그것을 보고 있다. 아는 자는 창작자이면서 관객이고, 배우이면서 관조자다. 이 이중적 구조를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영화 속 인물에 완전히 동일시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영화는 계속되지만, 아는 자는 그 모든 장면을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본다. 고통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빛의 패턴이 만들어낸 사건일 뿐이다. 영화는 계속 상영되지만, 아는 자는 그 스크린 뒤에서 조용히 깨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