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다. 겉으로는 사회의 규범 안에서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특정 생각과 걱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스스로를 불안정한 상태로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누군가는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고, 또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음속에서 끊임없는 독백을 이어간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인간은 누구나 생각에 붙들려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러한 비유를 드는 이유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분노, 불신에 매몰된 채 삶을 전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생존과 안전을 위해 본래 선택적이고 편향된 인식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정치적 프레임, 자극적인 정보와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들이 여러 겹으로 더해지면서, 우리의 사고는 점점 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처럼 각자의 논리 속에 갇혀 살다 보면, 생각은 예민해지고 삶의 균형은 무너지기 쉽다.
동양 철학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중용과 포용의 감각은 이런 환경 속에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삶의 가장 빛나는 시기인 청년 세대가 경쟁과 불신, 성별과 세대 간의 대립 속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소모하고, 그 결과로 결혼과 출산이 줄어들며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을 기록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묻게 된다.
타인을 쉽게 비난하는 태도는 종종 자기 내면의 불균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단죄하기보다, 그 사정과 배경을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생각을 돌린다. 연민과 포용은 약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해온 가장 오래된 힘이다. 어떤 상태이든 그것을 인정할 때에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마찬가지다.
경제적 성장과 공정한 제도, 성평등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인간이 수만 년 동안 협력과 신뢰를 통해 생존해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세대 간 갈등과 성별 갈등,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의 급증, 이웃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주거 문화, 일상에서 마주쳐도 굳어 있는 표정, 스승과 어른에 대한 존중의 약화는 공동체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들이다.
이러한 징후들이 하나둘 겹쳐질수록, 사회가 향하는 방향은 점점 더 황량해 보인다. 천천히 끓는 물속에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움직임을 잃는 개구리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미 익숙해진 불편함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줄다리기에서 몇 사람만 힘을 풀어도 팀 전체가 쉽게 끌려가듯, 공동체 역시 각자가 제 방향으로 흩어질 때 급격히 약해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탓하는 목소리보다, 다시 함께 힘을 모으자는 조용하지만 견고한 의견이다. 균형 잡힌 사고, 타인을 향한 신뢰의 회복,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씩 되살리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사회는 어느 한 집단의 노력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생각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작은 실천들이 모일 때 비로소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