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by 임풍

인간은 늘 스스로를 개선하려고 한다. 수시로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한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인생 명언과 공식을 수집한다. 어느 날은 한 문장의 명언이 가슴을 울리고, 어느 순간에는 오랫동안 찾던 해답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때의 느낌은 매우 좋다. 이제야 길을 찾은 것 같고, 이대로만 가면 인생이 조금은 나아질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 한두 번은 실제로 행동도 바뀐다. 심지어 잠깐이나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착각도 든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바로 이거야'라고 인생 비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능력이 하나 있다. 바로 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심은 흐릿해지고, 무엇을 다짐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믿었던 사실 자체가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날, 또 다른 말이나 문장을 읽고 다시 감탄한다. 평생을 배우고, 감동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 같지만, 정작 그 깨달음은 몸에 남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한때는 확신에 차 글을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까지 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당시에는 그토록 명확하고 강력했던 생각들이, 지금은 흔적만 남긴 채 망각 속에 파묻혀 있다.

이 반복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망각되지 않는 깨달음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아니면 깨달음이란 본래 잊히도록 설계된 환상에 불과한가. 인간의 삶은 깨달음, 초기 실천, 망각, 다시 새로운 결심이라는 순환 구조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이 구조는 멈추지 않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을 실제로 움직이는 힘이 생각이나 결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잠재의식에 새겨진 오래된 습관과 감정의 패턴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특히 분노와 화의 발화 구조는 완강하다. 겉으로는 다스릴 수 있어도, 그 틀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마지막 해결책처럼 침묵을 선택한다. 아예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모든 말은 오해를 낳고, 관계를 흔들고, 결국 자신을 다치게 만든다는 결론에 이른다. 침묵은 가장 완전한 수행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결심 역시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만 지나면 다시 타인에게 말을 걸고, 또다시 상처받는 자신을 목격한다. 결국 말하지 않겠다는 결심마저 망각의 목록에 추가된다. 이 모든 과정은 혼란스럽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런 인간의 습성에 대한 치유법은 있는 것일까. 어쩌면 문제는 망각 그 자체가 아니라, 망각을 실패로 규정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엄청난 깨달음을 통해 평생 평화롭게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반복을 통해 매번 조금씩 방향을 수정하는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한 번의 위대한 통찰이 인생을 영원히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수없이 잊어버리고, 수없이 다시 돌아오면서, 아주 미세한 변화만이 축적된다. 그것은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반응 속도의 변화이며, 감정에 끌려가기 전 멈출 수 있는 잠깐의 간격이다.

망각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구조일지 모른다. 기억이 완벽하다면 인간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모든 깨달음이 잊히지 않는다면, 삶은 경직되고 굳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잊고, 다시 감동받고, 또다시 같은 자리에 서는 존재로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망각 속에서도 반복되는 자신의 패턴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침묵의 결심이 무너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치유란 완벽한 변화가 아니라, 환상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위대한 깨달음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고, 대신 오늘도 똑같이 반복되는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잊어버리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또다시 돌아온 자신을 과장하지 않는 것, 이것이 좀 더 현실적인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아마도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현실적인 자유는, 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굴레 안에서 조금 덜 흔들리는 법을 배우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