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전환으로서의 신앙에 대한 한 묵상
이 글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쓰였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개념을 상대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또한 사도 바울을 예수와 나란히 놓거나, 그의 서신을 복음 그 자체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도 더욱 아니다. 이 글의 관심은 오히려 예수가 선포한 복음이 한 인간의 내면과 의식 속에서 어떻게 살아 있는 현실이 되는가에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단순한 미래의 보상이나 외적 사건으로만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라는 선언은 믿음이 단지 옳은 교리를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내면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의 서신들은 이 예수의 복음을 설명하고 풀어내는 과정에서, 신앙이 삶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권면은 행위의 양을 늘리라는 명령이 아니라, 신앙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기독교 사상가인 Emmet Fox와 Joel S. Goldsmith는 바로 이 부분을 깊이 성찰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교회의 권위를 대체하려 하지 않았고, 성경을 넘어서는 계시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신앙이 점점 하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믿음의 내적 구조를 다시 바라보려고 시도했다.
Emmet Fox는 믿음을 육신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바꾸는 힘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치유나 응답을 부정한 것도 아니다. 그는 육신과 환경을 인간 의식의 반영으로 이해했고, 믿음이란 하나님을 설득하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이 바뀌는 사건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병이나 결핍은 싸워야 할 실재라기보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면, 믿음은 더 강하게 믿으려 애쓰는 긴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신뢰이다.
Joel S. Goldsmith는 한층 더 급진적으로 나아간다. 그는 인간이 기도조차도 자신의 목적과 결핍을 이루기 위한 행위로 사용할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래서 바울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을, 끊임없이 말을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하던 인간적 사고가 잠잠해진 상태로 해석했다. 그의 언어로 말하면, 인간의 마음이 조금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사고의 자리를 Christ mind가 대신 차지하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믿음을 결과 중심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믿음은 무엇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의식의 방향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붙들고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믿음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통찰은 바울이 말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라는 권면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차이도 있다. Emmet Fox는 신앙의 원리를 비교적 이해 가능한 언어로 설명하며, 인간이 그 전환을 배워갈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Goldsmith는 마지막에는 그 배움조차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본다. 생각을 고치려는 노력, 믿음을 유지하려는 긴장, 하나님을 향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태도 자체가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공통으로 도달한 결론은 같다. 진정한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께 무엇을 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더 이상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는 상태이다. 믿음은 행동 이전에 의식의 상태이며, 결과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간혹 육신의 회복과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믿음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인식이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다. 믿음은 얼마나 간절히 구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의 문제다. 하나님을 멀리 두고 그분의 개입을 기다리는 자리인가, 아니면 이미 늘 우리와 함께 임재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리인가. Emmet Fox와 Joel S. Goldsmith의 사유는, 우리로 하여금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조용히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예수가 처음부터 던졌던 질문과 다르지 않다. 예수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믿음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물었다. 즉 두려움의 자리인지, 신뢰의 자리인지, 자기중심의 자리인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자리인지를 반복해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