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

by 임풍

속담에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지속적인 가려움은 참기 어렵다. 피부가 아물어 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 간질거림은 인간의 신경을 자극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손톱으로 몇 번 긁는 순간의 쾌감은 잠깐이지만, 그 대가는 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상처는 다시 벌어지고, 세균이 침투하고, 결과적으로 치료 기간은 더 길어진다. 몸이 스스로 회복하려던 시간을 인간의 조급함이 방해한 셈이다.

이 단순한 신체 경험은 우리의 삶 전체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눈이 조금 건조하다고 자꾸 비비면 각막이 상하고, 귀가 약간 답답하다고 면봉을 깊이 넣어 후비면 외이도에 상처가 생긴다. 코가 막힌다고 과하게 자극하면 점막이 붓는다. 몸은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불편을 참지 못해 개입한다. 그리고 그 개입이 종종 문제를 키운다.

사회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제도나 관습, 혹은 한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즉각적인 수정과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의 상황은 당장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원인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역사적 맥락,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 심리적 상처, 경제적 조건, 수많은 선택이 누적되고 얽혀 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가려움은 단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것을 긁는 행위는 복합적인 구조 전체를 건드리는 일이 된다.

19세기 사회 변동의 역사만 보아도 그렇다. 산업화와 정치 개혁을 향한 급격한 시도들은 때로는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쌓았지만,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갈등과 부작용을 동반했다. 그런 부작용의 합계가 1억 명 이상의 죽음을 부른 세계 1,2차 대전이었다. 인간은 문제의 한 단면을 보고 그것을 제거하면 전체가 좋아질 것이라 믿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하나를 바꾸면 다른 부분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또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 마치 피부 아래의 신경과 혈관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세상의 시스템도 보이지 않는 연결망 속에 놓여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는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개입은 충동이 아니라 냉정한 이해에서 나와야 한다. 가려움이 생겼을 때 잠시 숨을 고르고, 왜 이런 감각이 나타났는지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눈앞의 불편이 전체 회복 과정의 일부일 수 있다는 통찰이 필요하다. 최근 중동에서의 전쟁도 에너지 확보나 핵 개발 제지 이면에 페트로 달러의 미래, 주요 국가들의 위상 변화와 세계 질서의 재편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자기 운영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한 번 수정한 프로그램이 다시 우리를 지배할 수도 있다. 급하게 설치한 임시 패치가 시스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변화는 가능하되, 성급함은 경계해야 한다. 수정은 하되, 전체 구조를 이해하려는 겸허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연은 리듬을 가진다. 상처가 아물 때도, 사회가 변할 때도, 한 사람의 마음이 성숙할 때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는 소극성이 아니라 깊은 신뢰다. 우리가 모든 원인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기도 하다. 당장의 가려움을 참는다는 것은 단순히 인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질서를 믿는 일이다. 당장의 불편보다 장기적인 회복을 선택하는 지혜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상처는 서서히 아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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