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생명을 움직이는 힘에 대해

by 임풍

인류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질문을 던져왔다: "우주와 생명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은 무엇인가?” 우선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준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세기 2:7).
여기서 말하는 생기가 곧 성령의 호흡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생명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또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라고 하였다. 즉, 성령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새 힘을 주는 에너지로 보인다.


철학의 시선을 살펴보면, 동양의 철학자 노자는 이 힘을 도(道)라고 불렀다. 도는 이름 붙일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만물을 낳고 기르는 근본 법칙으로 여겨진다. 노자는 "사람은 억지로 도를 조작하려 하지 말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길 때 도와 조화를 이룬다"라고 가르쳤다. 인도의 고대 베다 철학에서는 프라나라는 우주 생명 에너지 개념를 다루고 있고, 힌두교에서는 모든 것은 브라흐만(에너지의 원천)에서 나왔고, 진동(Nada)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편 서양 철학자 스피노자는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모든 존재 안에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힘이 있다고 보았다. 이를 코나투스라고 불렀는데, 결국 우주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각 개체 안에서는 살아 있으려는 의지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참고로 스피노자는 17세기에 유대교 공동체에서 파문을 당했다. 그 이유는 유대교 성경을 문자 그대로의 신성한 계시로 보기보다, 인간이 쓴 역사적, 문학적 기록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은 우주와 생명을 움직이는 힘을 진동과 에너지라 본다. 교류(AC) 전력 시스템의 개발로 현대 전력망의 기반을 닦은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세상을 에너지와 진동으로 보았다. 그는 “우주를 이해하려면 에너지, 주파수, 진동의 관점에서 생각하라”라고 말하며, 만물의 본질을 물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파동에서 찾았다. 아인슈타인은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그에게 우주는 신의 언어로 쓰인 조화로운 수학과 같았다. 그는 에너지가 물질로, 물질이 다시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밝히며, 우주의 모든 현상이 하나의 질서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양자물리학은 이 흐름을 이어간다. 입자 하나하나가 단순한 고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파동의 흔들림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이 발견한 이 세계는 신비로울 만큼 성령이나 도의 개념과 닮아 있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 철학, 과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크게 보면 모두 한 가지 진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우주와 생명을 움직이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대전제하에, 성경은 그 힘을 성령이라 부르고, 노자는 도라 하며,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라 했고, 현대 과학자들은 에너지와 진동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그 힘이 있기에 우리는 숨 쉬고, 생각하며, 서로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큰 우주의 질서 속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