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의 허상
플라톤은 우주를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 하나의 영혼이 깃든 전체”라고 보았다. 그는 혼돈 속에서도 일정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별들의 질서 속에서 신적 이성(logos)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천문학과 물리학은 그의 직관을 과학의 언어로 확인해 주고 있다. 지구는 365일마다 태양을 돌며, 태양계는 2.2억 년마다 약 초속 220km 속도로 다시 은하의 중심을 향해 거대한 나선 운동을 한다. 이처럼 행성의 중력, 은하의 회전, 심지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조차 모두 하나의 통일된 수학적 질서로 묶여 있다. 만약 서로 대립하는 힘이 실재한다면, 이 정교한 조화는 한순간도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즉 우주에는 단 하나의 힘이 질서정연하게 우주를 운행하고 있다.
양자물리학은 물질이 고정된 입자가 아니라, 하나의 보편적 에너지 장(quantum field)의 진동임을 밝혀냈다. 전자, 광자, 원자핵은 모두 동일한 바다의 파문일 뿐이다. 고대의 연금술사들은 “위의 것과 아래의 것은 같다(As above, so below)”라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프랙털 구조와 자기유사성으로 이해한다. 우주의 대규모 구조에서부터 세포 내 DNA의 꼬임에 이르기까지, 질서의 패턴은 스스로를 복제하며 확장하고 있다.
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의 법칙조차 무질서의 증가만을 뜻하지 않는다. 생명은 오히려 엔트로피의 흐름 속에서도 질서를 만들어내 존재한다. 즉, 우주는 단순히 무너지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조직화 (Self-Organization)라는 힘을 통해 더 높은 조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힘은 의식이라 불러도 무방하고 자신이 믿는 신이라고 여겨도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의 움직임이 아니라, 방향성과 목적성을 가진 창조적 힘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헤르메스주의의 고대 문서에는 “모든 것은 하나에서 나왔고,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신비적 개념이 아니라, 우주 진화의 순환 구조를 암시한다. 별이 죽으면 그 잿더미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나듯, 죽음과 탄생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한 호흡의 들숨과 날숨이라는 비유이다. 기독교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를 “신의 호흡 속에서 만물이 함께 들어쉬고 내쉰다”라고 표현했다.
이런 관점들은 공히 우주적 일원성(monism), 하나의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인식이다.
뇌의 송과선은 오랜 신비주의적 전통에서 영혼의 눈, 제3의 눈이라 불려왔다. 현대 신경과학은 송과선이 빛과 리듬, 수면주기, 멜라토닌 분비를 조절하는 기관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는, 이 송과선이 우주적 리듬과 인간의 내적 리듬을 연결하는 생물학적 수신기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주가 거대한 파동의 장이라면, 인간의 의식은 그 장을 해석하고 공명하는 작은 안테나여야 한다. 바로 그 안테나가 송과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단지 우주의 산물이 아니라, 우주의 자기인식(Self-awareness)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우주의식의 일부라면, 우주적인 단일한 질서 속에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이중성의 개념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 건강과 질병, 풍요와 빈곤, 신과 악마. 이 대립적인 개념들은 우주의 본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소화하는 단일한 힘만 믿으면 된다. 소화불량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고 그것을 치료의 대상으로 삶은 행위가 바로 개념 이중성의 산물이다. 우주에는 소화라는 흐름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면서 마치 원래 우주에는 없는 불행이 있다고 믿는 것도 비슷하다. 스피노자는 “신은 완전하며, 완전 속에는 결핍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악이란 실체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 인식이 만든 그림자였다. 가짜라는 말이다. 그림자는 빛이 없을 때만 존재한다. 빛이 켜지면 어둠은 사라진다. 이처럼 우리가 우주적 질서라는 하나의 빛을 인식할 때, 모든 부정적 개념은 스스로 사라진다. 모든 부정적인 개념을 만든 이중성이나, 유일한 신성의 힘과 대립적인 또 다른 악마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종이호랑이를 믿는 것과 같다. 종이로 만든 호랑이는 불을 만나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현대 인류는 가짜에게 엄청난 권위를 부여하고, 우주에 마치 두 개의 힘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이중성의 교리를 진리처럼 전파하고 있다.
태양은 인간의 죄악이나 미움을 고려하지 않고 매일 떠오른다. 심장은 인간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뛴다. 이 단일한 리듬이 바로 신성의 맥박이다. 인간이 이 우주적 리듬과 자신을 일치시킬 때, 삶은 더 이상 이중성의 불행과 행복의 싸움이 아니라, 우주가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장엄한 행위가 된다.
과학이 에너지를, 철학이 이성을, 신비 사상이 영성을 말할 때, 모두 같은 중심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는 하나의 힘이 있다. 그 힘은 질서이며, 평화이며, 사랑이며, 풍요이다. 그것은 만물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장(場), 그리고 모든 생명의 내면에서 “나는 존재한다(I Am)”라고 울려 퍼지는 근원적 진동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이중성의 노예가 아니다. 그는 우주와 함께 숨 쉬는 존재,
하나의 힘과 질서를 살아내는 작은 우주(microcosmos)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