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고, 내가 행동한다”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단순한 믿음 뒤에는 훨씬 복잡한 실상이 숨어 있다.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은 놀랍게도 한 목소리로 말한다: 인간은 하나의 통일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내부 세력들의 연합체, 혹은 잠정적 협약 속에 살아가는 '내면의 군중'이다.
동양의 속담 중에는 “내 안에는 여러 아이들이 있다”라는 표현이 있다. 어린아이처럼 즉흥적이고 탐욕스러운 자아, 부모처럼 엄격한 자아, 예술가처럼 감성적인 자아가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싸우며 우리의 마음속에서 공존한다. 서양의 근대 심리학자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구조를 보았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이드(id), 에고(ego), 슈퍼에고(superego)라는 세 세력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보았다. 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결국 이 세 영역 중 어느 세력이 순간적으로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같은 진실을 일찍이 감지했다. 그는 로마서에서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또 다른 법이 나를 사로잡는다”라고 고백했다. 즉,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다른 법과 의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이상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욕망과 습관의 방향으로 끌려간다. 우리는 매번 달콤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자아와 혈당을 걱정하는 또 다른 자아 간의 싸움을 늘 경험한다. 마침내 후자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전자가 자책하는 것도 자주 경험한다.
이러한 통찰은 문학 속에서도 반복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바로 인간이 가진 이 내적 이중성의 극단적 표현이다. 한 사람의 내면에 서로 다른 성향의 인격이 공존하고, 각자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번갈아 무대 위에 등장한다. 현대 심리학은 이를 다중인격 혹은 분리된 자아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극단적 병리 현상을 넘어, 사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작은 하이드'를 품고 산다.
이러한 전통적 지혜는 현대 뇌과학에서도 실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Incognito>에서 인간의 뇌를 '민주주의적 혼돈의 장'에 비유한다. 즉, 우리의 의식은 단일한 통제자가 아니라, 수많은 신경 집단(neural assemblies)들이 끊임없이 논쟁하며 일시적으로 다수결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신경 의회(neural parliament)와 같다고 본다. 우리가 나의 결정이라 부르는 것도 사실은 이 의회 속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순간적으로 통과시킨 하나의 법안에 불과하다.
뇌손상 경험을 기록한 저서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My Stroke of Insight)>의 저자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는, 자신의 뇌출혈 중 경험을 통해 좌뇌와 우뇌라는 두 자아의 명확한 분리를 직접 체험했다. 한쪽 뇌가 무너졌을 때, 다른 쪽 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 의식이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현실 해석 시스템이 공존하는 구조임을 실감하게 해 준다.
신경과학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행동을 실제로 통제하는 것은 의식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자리한 무의식적 신경 회로다. 신경세포들이 자극에 반응하는 속도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결정했다고 느끼기 훨씬 전에 이미 행동을 시작하도록 명령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그 이유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이 모든 사실은 한 가지 결론으로 수렴된다. 인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그 대신, 내면의 지체들 간의 싸움과 타협의 결과로 현실을 해석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내부 전쟁의 순간적 승리일 뿐이다. 내면의 다양한 세력들이 끊임없이 세상과의 접촉 속에서 재조정될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성장한다. 진정한 의식의 확장은 내가 하나의 자아라는 착각을 벗고, 내면의 군중을 조용히 관찰하며, 그들 사이의 균형을 조율하는 능력을 배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