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생명은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고 무생물인 돌이 생명을 품고 움직이며 말을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환상일까, 아니면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일까? 이 질문은 고대의 종교적 상징부터 현대 과학자들의 사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인간 존재의 핵심적 질문이다. 성경, 양자역학의 선구자인 에르빈 쉬뢰딩거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인 생물학자 폴 너스의 동명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모두는 이 물음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며, 그들의 언어로 생명을 해석한다.
성경에서 돌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무생물의 상징이 아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반석을 쳐 물을 낸다.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곳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출 17:6)라는 구절은 무생물인 돌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이 흘러나오는 기적을 묘사한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기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누가복음에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40)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돌은 단지 비유적 장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응답 능력을 지닌 잠재적 존재로 그려진다.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고 선언한다. 이는 생명과 혈통의 전승이 단지 육체적 조건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와 창조 능력에 의존한다는 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경 속 돌은 단지 차가운 물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 생명으로 변모할 수 있는 상징체다.
이와 유사한 질문을 던진 인물이 바로 양자물리학자 에르빈 쉬뢰딩거다.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1944년 출간> 저서에서 물리학의 틀을 가지고 생명을 설명하고자 했다. 쉬뢰딩거에게 생명은 질서를 유지하는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모든 물질계는 무질서(엔트로피)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생명체는 오히려 그 흐름에 저항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자신을 복제한다. 그는 이 독특한 현상을 ‘질서로부터 질서(Order from Order)를 만든다’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이는 생명체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질서 있는 것(예: 음식물, 태양 에너지 등)을 섭취하고 처리하여 자신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생명이 단지 무생물의 원자 구조로부터 나타날 수 있다는 그의 통찰이다. 그는 마치 돌처럼 보이는 물질 구조들이 특정한 배열과 정보 전달 체계를 가질 때, 갑자기 움직이고 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충격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마치 돌로 조각한 인형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느낌”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 경이로움을 나타낸 것이다. 이로써 그는 생명을 기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닌, 정보와 질서의 물리적 구현으로 보았다.
* 참고: 쉬뢰딩거의 생명에 대한 개념은 이후 DNA 구조 발견(왓슨과 크릭, 1953)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비주기성 결정체(aperiodic crystal)"가 존재해야 한다고 예측했는데, 이것이 훗날 DNA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정보 중심적 시각은 현대 생명과학에서도 강하게 이어진다. 생물학자 폴 너스는 자신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2020년 출간>에서 생명을 다섯 가지 핵심 개념으로 설명한다: 세포, 유전자, 생화학, 정보, 진화. 너스에 따르면 생명은 자기 복제, 자기 유지, 그리고 진화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보 시스템이다. 그는 세포를 생명의 기본 단위로 보고, 유전자는 그 세포 안에서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코드라고 말한다. 이 정보는 생화학적 반응을 통해 구현되며, 그 과정은 정교하게 조율된 질서의 산물이다. 너스는 쉬뢰딩거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정보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또한 생명의 복잡성과 정교함, 그리고 진화를 통해 스스로를 개선해가는 능력에 깊은 경외감을 느꼈다. 신학적 해석에는 못 미치지만, 그 역시 생명을 단순한 화학 반응 이상의 것으로 여긴다.
* 참고: 폴 너스(Paul Nurse)는 효모에서 세포 분열을 조절하는 유전자 cdc2를 발견했는데, 이 유전자가 인간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인간 유전자인 CDK1 (Cyclin-Dependent Kinase 1)을 효모에 주입했고, 놀랍게도 이 인간 유전자가 효모의 세포 주기를 정상적으로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인간 유전자가 효모에서 작동해서 분열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세 관점은 서로 다른 언어와 전제 속에서도 본질적인 질문에서 만난다. 예를 들어 상징적으로 무생물인 돌이 어떻게 생명을 지닐 수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통해 돌이 물을 내고, 찬양하며, 자손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쉬뢰딩거는 물질에 내재한 물리적 원리 속에서 정보가 창발적인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폴 너스는 그 정보를 저장하고 실행하는 세포와 유전자, 그리고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생명을 설명한다. 이들은 각각 신학, 물리학, 생물학이라는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모두 무질서한 물질이 어떻게 질서와 의미를 획득하는가라는 질문을 향하고 있다.
결국, 생명이란 물질적 구성요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질서라고 볼 수 있다. 돌은 그 자체로는 침묵하지만, 그 위에 하나님의 숨결이 머물거나, 정보가 흐르거나, 세포가 형성되면,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놀라운 전환은 생명이 단지 물리적 현상 이상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생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질서를 만들고, 의미를 전달하며, 존재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돌들이 언제 노래하고 물을 내며 생명을 낳을지, 침묵하며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