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적인 인간 존재와 상이한 해결 관점

by 임풍

약 2,500년 전, 한 왕자는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말했다: “망상에 빠지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며, 돈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이 만약 집착이라면, 그 왕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온다. 창세기(18장과 19장)를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그곳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멸망시키겠습니까?”라고 묻는다. 하나님은 “아니, 50명이 있다면 멸망하지 않겠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45명, 40명, 30명, 20명, 끝내는 10명까지 내려간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 수만큼 의인이 있다면 멸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결국 그 도시는 멸망했다. 왜냐하면 의인 10명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 몇 명만 간신히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불에 타 사라졌다.

이 두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공통된 통찰을 담고 있다. 인간은 완전히 집착에서 벗어나기도, 완전히 의롭기도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건강과 장수, 부유함을 원하고, 남을 속이거나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하며, 이상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현실에 발이 묶이곤 한다. 왜 그럴까? 그건 인간의 구조 자체가 모순적이고 조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영혼, 생각, 감정, 의식 등)은 무한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물질(몸, 생리, 감각 등)은 유한하고 쉽게 아프다.

​이 두 가지는 자주 충돌한다. 예를 들어, 정신은 높은 곳 사이를 밧줄로 건너는 상상을 할 수 있지만, 몸은 실제로 시도하려 하면 두려움에 떤다. 마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지만, 몸은 고단함과 욕망에 끌려간다. 사도 바울은 성경(로마서 7:23)에서 이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묘사한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집착에 빠지기 쉽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때론 망상을 믿기도 한다.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 보려고 한다.

그래서 철학과 종교는 이런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 현실은 사실 꿈이나 환상이다.
- 진짜 나는 몸과 생각이 아니라 순수의식이다.
- 이 세계는 실제로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 속에서 펼쳐지는 3차원 영화 같다. 우리는 바깥 세상을 보고 있다고 느끼지만 이는 착각이며, 사실은 순수의식이 뇌속 또 신과 연결된 클라우드 모니터에서 3차원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있다.
- 우리의 생각을 우주적인 의식과 일치시키면, 자신의 희망이 이루어진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겪는 질병, 고통, 죽음 등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의 꿈일 수 있다. 즉, 어떤 철학은 이 현실과 세계를 고정된 실체로 보고, 또 다른 철학은 의식 속 허상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가 겪는 이 현실은 진짜인가? 아니면 의식의 반영인가?” 그리고 “이 모순적인 인간의 조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각자가 어떤 관점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탄생과 죽음, 질병과 고통, 영생과 윤회 등 인간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큰 문제들에 대한 해답도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