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by 임풍

인간은 누구인가? 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철학자, 성인, 과학자, 신비주의자들의 생각을 지배해온 문제였다. 이는 삶의 의미와 존재의 본질을 향한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을 드러낸다. 특히 지금처럼 가장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상이지만, 개별적인 인간의 삶이 힘들어지고, 소외감이 늘어나며, 상호 진정한 소통이 어려워지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마음과 의식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인간 의식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과 양자물리학의 발견, 고대 철학과의 놀라운 접점을 통해 우리는 인간 존재의 질문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식에 단계가 있다는 주장이 많다. 의식의 단계는 다양한 전통과 학자들에 의해 여러 방식으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그 분류 방식이 다를지라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방향성은 하나다. 인간 의식은 낮은 단계에서는 물질세계와 자아(에고)에 대한 동일시에서 출발하여, 점차 일원적 통합 의식 혹은 순수의식의 차원으로 승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단순히 몸과 생각, 감정이라는 개별적 요소의 집합이 아니라, 삶의 도구인 그것들을 경험하는 존재 그 자체라는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우리는 자신을 육체적 정체성과 동일시한다. “나는 내 몸이다”, “내 생각이 곧 나다”라는 인식 아래에서 살아간다. 이런 관점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인식이며, 외부 원인에 대해 불평을 하게 된다. 그러나 깊은 자기 탐구와 내적 성장, 혹은 영적 체험을 통해 인간은 서서히 그것들이 본질적인 나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늘 변하는 몸, 감정, 사고는 단지 경험의 도구이며, 그 너머에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는 의식, 그것이 진정한 나라는 통찰이 일어난다. 이런 관점은 나의 의식이 현실을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며, 외부 현실은 나의 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로 보는 것이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닥다리(창세기 28장)"와 예수께서 "자신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장면(요한복음 1:51), 이 둘은 상징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인간 의식의 변화, 곧 육적인 의식에서 영적인 의식으로의 승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을 순수의식으로 이해할 때, 현대적인 삶은 도구와 주체의 괴리 현상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본성은 존재 그 자체(Being)인데, 우리가 아닌 몸과 생각에 따른 행함(Doing)이 삶을 지배하는 현상이다. 늘 애쓰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것은 수단인 생각(에고)과 몸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즉 현대 사회는 행함(doing)의 문화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계획하고, 성취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그러나 의식이 고차원으로 승화할수록, 인간은 새삼 존재(being)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깊은 안식의 상태를 말한다. 노자의 무위도 그런 자각이다.

이러한 전환은 내면의 변화뿐 아니라, 세계를 보는 관점의 전환을 수반한다. 우리는 세상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유일한 우주의식(신성)의 발현체들이라는 인식이다. 이런 연결성이 느껴지면, 우리는 등대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타인의 길을 비추며, 자신이 속한 더 큰 전체성을 자각하는 존재로 변한다. 이것이 인도 문화권에 인사말로 사용되는 나마스테의 의미이다: “내 안의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에게 인사합니다.”

놀랍게도, 현대 양자물리학은 이러한 영적 진리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언어를 제공하고 있다. 불확정성 원리, 양자 얽힘, 관찰자 효과와 같은 개념들은 우리가 그동안 물질이라 믿었던 세계가 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는 파동의 장(field) 임을 시사한다. 관찰자 효과는 관찰 자체가 현실을 구성한다는 충격적인 통찰을 알려준다. 이는 세계는 마음의 반영이라는 불교적 통찰이나 고대철학과 직결된다. 양자 얽힘은 모든 것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는 힌두 철학의 “그것이 곧 나다”라는 선언과도 연결된다. 또한 불확정성 원리는 절대적인 객관성이라는 뉴턴적인 신화를 무너뜨린다. 실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자와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인간 의식이 단지 뇌의 생리적 부산물이 아니라, 우주적 필드 속에서 물질로 잠시 현현한 에너지의 일시적 형태라는 고대의 통찰을 다시 조명하게 한다. 즉, 우리는 우주의 관찰자이자, 동시에 현실 생성의 참여자라는 인식이다.

이런 인식에 따르면, 우리는 서로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의식이 개별화된 존재로서 자신을 체험하는 여정의 일부이다. 인간의 삶은 우주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각 존재는 우주적 의식의 하나의 눈, 하나의 마음이다. 한 인간은 태평양의 한 방울이자 동시에 대양 전체와 일체이다. 파도는 순간적으로 형체를 띠지만, 그것은 결코 바다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개별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바다에 속해 있으며, 그 물결 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잠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우주와 나, 나와 다른 존재와의 통합적인 인식은 삶의 방식까지도 전환시킨다. 인간의 본성이 하나임을 자각한 순간, 타인과 세상을 위한 삶은 곧 자신을 위한 삶이 된다. 세상에 기여하는 일은 희생이 아닌 회복이고, 분리된 남이 아닌 나 자신의 또 다른 표현을 위한 자연스러운 사랑의 발현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여가 강요나 희생을 통한 것이 아니라, 자기 본연의 깨달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 자신의 진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곧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만든다. 등대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려주되, 결코 배를 대신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함으로써 안내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의식이 깨어난 인간은 타인을 통제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삶 자체가 타인을 비추는 조용한 기여가 된다.

이러한 의식의 고양은 새롭게 무엇을 배우는 과정이라기보다, 우리가 본래 누구였는지를 기억해 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깨달음은 도달해야 할 어떤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망각된 본질로의 귀환이다. 생각, 감정, 몸, 에고는 우리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는 도구일 뿐, 우리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순수의식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한 조각이자, 동시에 전체이다. 개별성과 전체성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인 역설의 진리다. 파도이면서 바다이고, 방울이면서도 전체 대양인 우리는, 결국 자신만의 진동으로도 세상을 울릴 수 있는 존재다. 지금 수백만 개의 나뭇잎이 나의 호흡을 위해 산소를 만들어주고 있음을 자각하는 존재이다. 스스로 빛나되, 남을 비추고, 조용히 흐르되, 대양 전체를 이루는 존재. 의식의 여정은 바로 이 진리를 삶 속에서 구현해가는 끊임없는 귀향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