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청산과 회귀의 준비

by 임풍

우리가 세월의 시소를 타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머릿속의 기억 창고에 무언가를 하나씩 채워 넣는다는 뜻이다. 어릴 때는 기억 창고가 새롭고 단순하지만, 어른이 되면 기억해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기억은 경험의 흔적이자 동시에 삶의 무게로 작용한다.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인생의 단맛이지만, 아픈 기억들은 마음속에 오래 머물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를 자꾸 과거로 끌어당기며, 현재의 평온을 방해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 조물주로부터 텅 빈 인생을 빌려 받은 존재이다. 몸이라는 렌터카를 잠시 대여받아 약 80년의 드라이브를 하는 셈이다. 삶의 길을 달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풍경을 지나며, 그때마다 새로운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집안의 방마다 물건이 늘어가듯, 머릿속의 방들도 기억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게 쌓인 기억은 곧 우리의 인생 기록이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부채이기도 하다.

뇌 속 해마는 이 모든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다. 그곳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서로 얽히며, 1,000조 개에 이르는 시냅스 결합이 만들어진다. 이 거대한 연결망이 곧 기억의 실체이다. 삶을 오래 살아갈수록, 그 결합은 복잡하게 얽히고, 때로는 중력처럼 무겁게 우리를 붙든다. 하지만 조물주는 세심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도록 설계했다. 이는 단순한 노화의 결과가 아니라, 어쩌면 자연이 마련한 회귀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기억이 사라질수록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우리는 왔던 대로 본래의 빈 마음으로 돌아간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도, 그 어리석음 속에 숨은 생명의 활력을 찬양했다. 그는 지혜로운 자가 늙어감에 따라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지만, 어리석은 자는 여전히 젊고 생기 있게 살아간다고 풍자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노년이 다시 단순함과 순수를 회복하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즉, 나이 들어 다시 어린아이처럼 빈 마음이 된다는 것은 조물주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인간 존재가 스스로 순환하며 본래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배가 짐을 실어 나르듯 기억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에는 그 짐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가 온다. 만약 상실이나 아픔, 후회 같은 기억이 계속해서 마음의 무게를 짓누른다면, 우리는 매우 힘든 노년기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을 놓아주어야만 다시 떠날 수 있다. 인생에 대해 기억의 빚을 갚는다는 것은 바로 이 불필요한 짐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 세상에 왔을 때처럼 다시 빈손과 빈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기억의 청산은 단순한 망각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이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아팠던 기억을 해소하고 기쁜 기억으로 덮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남은 생을 평온하게 만드는 지혜이다. 그때가 좋았다는 말에 매이지 않고, 지금의 순간을 충분히 살아갈 때, 과거의 자동 재생은 멈추고, 현재가 온전히 드러난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기억을 쌓고 또 지워나가는 여정이다. 태어날 때 빈 그릇으로 왔듯이, 떠날 때도 빈 그릇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월의 시소는 끊임없이 오르내리지만, 그 중심축은 언제나 고요하다. 그 중심이 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이며, 조물주가 처음 우리에게 빌려준 자리이자, 언젠가 되돌아가야 할 본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