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물리학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공식은 외울 수 있었지만, 왜 배워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열에너지나 양자역학이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반면 좋아했던 과목은 윤리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같은 서양 철학자들의 질문을 따라가는 일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수능 과목이 아니었기에 부담 없이 사유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책이 있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다.
처음에는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과학책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 책은 과학서라기보다, 인생을 묻는 철학서에 가까웠다. 물리학은 과학의 언어로 쓰인 철학이었다.
이 책은 ‘시간’이 우리가 믿어온 것처럼 절대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시간은 유일하지도, 방향이 정해져 있지도 않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은 지구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간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해석하며, 미래를 계획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세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시간을 지향해야 할까?
앞으로 어떤 시간을 살아가야 할까?
“우리가 시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지금’은 어디까지를 의미할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은 현재일까, 이미 과거일까? 로벨리는 그 기준점이 얼마나 세밀하냐에 따라 현재의 범위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을 하루, 24시간으로 규정하고 싶다. 매년 1월 1일이면 장기 계획을 세우고, 매달과 매주를 나눈다. 그리고 매일 아침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내가 삶을 설계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하루다.
그래서 나에게 ‘지금’은 오늘 하루다.
어느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 하루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되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나는 매일 하루, 내가 되고 싶은 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싶다. 지금의 시간은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즐겁게, 설레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나에게 카르페 디엠은 ‘오늘 하루를 즐겨라’라는 말이다.
“생각도 과거에서 미래로 펼쳐나가야지, 그 반대가 되면 머리에서 열이 나고 만다.”
우리는 매 순간을 선택하며 산다.
아침에 일어날지, 조금 더 잘지.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저녁에 무엇을 할지.
사소해 보이는 선택부터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까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후회한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 인생을 가장 크게 바꾼 선택은 이혼이었다.
아이를 낳고 채 여섯 달이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남편은 시부모가 있는 자리에서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전에도 그는 화가 나면 욕을 하곤 했다.
나는 그것을 가볍게 여겼고,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는 사과를 했지만 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미안해. 하지만 너도 잘한 건 없어.”
그 말은 나에게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아도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날 이혼을 결심했다.
이후 오랫동안 나는 과거를 후회했다. 처음 욕을 들었을 때 관계를 끝내지 못한 것을, 그 사람과 결혼한 것을, 함께 보낸 모든 시간을. 그 후회는 거의 2년 동안 나를 괴롭혔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
그러다 이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생각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
과거를 곱씹는 사고는 결국 나를 갉아먹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이 선택 또한 언젠가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로 했다.
“존재의 문법이 아니라 되어감의 문법이다.”
이 문장은 나의 삶을 설명하는 말이 되었다.
이혼이라는 선택이 그 자리에 머무는 사건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부터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사회가 정해준 시간표대로 살아왔다.
학생이어서 공부했고, 남들이 가는 대학에 진학했고, 전공이 요구하는 경로를 따라 대학원에 갔다. 취직했고, 연애했고, 결혼했다.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깊이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이혼은 내 30여 년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심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깨달았다. 삶은 사회적 시간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과 속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진로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안정적인 삶만이 나의 성향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성장하며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최고의 문법, ‘되어감의 문법’을 실천하며 오늘도 나의 배역을 고민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
이 책을 덮으며,
“생각도 과거에서 미래로 펼쳐나가야지, 그 반대가 되면 머리에서 열이 나고 만다.”
이 문장에 마음의 밑줄을 남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지음 | 이중원 옮김
쌤앤파커스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