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 중 '좋은 이웃'을 읽고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이 말이 주인공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우리는 아직 전세집을 전전하고 있고 집을 비워달라는 주인집의 전화에 다시 이사할 것이 걱정인데, 내 나이 또래의 부부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윗집에 이사를 와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시끄러울 수 있다고 양해를 구하러 온 부부. '어쩔 수 없죠. 제가 아이들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 시간만 피해 주세요'라고 애써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기분이 묘하다. 부모님이 도와준걸까? 아님 자신들이 산 걸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 사고로 장애를 입은 그래서 더 마음이 간 아이었다. 다른 아이들 수업료를 올려 받을 때도 이 아이만큼은 수업료를 올려받지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드려 준 이야기. 이사를 가게 되어 더 이상 수업이 어렵울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덧 붙인 이야기. 새로운 아파트에 분양을 받아 간단다. 반사적으로 '축하해요'라고 말은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내가 편의를 봐주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걱정하냐. 이런 마음이 들었다.
'좋은 이웃'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고 내가 주인공이면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 질투 >
초인종은 늘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울린다.
나는 미리 생각하지 않은 얼굴로
문 앞에 선다.
괜히 웃고
굳이 묻지 않는다.
내 위치가 탈로날까 봐.
이미 나와버린 괜찮다는 말.
그 말은
닫힌 문 쪽에 두고
나는 집으로 들어간다.
같은 높이에서
출발한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른 층계에 서 있다.
그 차이를 늦게 알아버린 나는
난간을 더듬으며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믿었는데
신발을 벗는 순간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이 겨우 남아 있다.
나는 그 공간마저 빼앗길까
재빨리 자리를 잡아 본다.
나는 서 있는 자리를
다시 확인한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믿으며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뒤로 떨어지지 않게
내가 서 있어도
공간이 더 좁아지지 않게
서 있는 자리에서 버틸 수 있게
두 다리에 힘을 준다.
읽은 마음은 오늘도 시가 되어 이곳에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