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과학기술에 세금을 쓰는가

by bookground


0.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에 매년 얼마나 투자하는가


우리는 매년 과학기술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2026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35조 원을 넘는다.

정부 총지출(727.9조 원)의 약 4.8%에 해당하는 규모다.


예산은 숫자가 아니다.

예산은 국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선택이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매년 일정 비율을 연구개발에 고정적으로 배정한다는 것은,

국가가 당장의 소비가 아니라 지식의 축적을 선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체 규모는 더 크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총 연구개발비는 약 131조 원으로, GDP 대비 비중은 5.13%를 기록했다.
이 중 정부·공공 재원은 21.2%(약 27조 원), 민간·외국 재원은 78.8%(약 103조원)으로 나타났다.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OECD MSTI; 동아사이언스, 2025.12.26. 재인용)


이 수치에서 보듯 민간이 연구개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매년 35조 원이 넘는 예산을 연구개발에 투입한다.


민간이 이미 이렇게 투자하고 있는데,
국가는 왜 세금을 들여 여전히 투자해야 하는가.

1. 정보라는 재화의 특수성


이 질문에 대해 경제학자 케네스 에레우는 1962년 논문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시했다.

그는 발명은 “정보의 생산(production of information)”이라고 정의했다.

Invetion is here interpreted broadly as the production of knowledge
(출처 : Arrow, Kenneth J. (1962). "Economic Welfare and the Allocation of Resources for Inven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 609–626.)


정보는 특이한 재화다.

한 사람이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공개되면 완전히 독점하기도 어렵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① 비경합성(non-rivalry)

② 비전유성(inappropriability)

③ 불확실성(uncertainty)

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완전경쟁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재화는 사적으로 거래 가능하고,

미래가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개발은 그렇지 않다.

지식은 한 번 생산되면 추가 비용 없이 반복 사용이 가능하다.

연구는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한 연구 성과는 어떤 상태가 실현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불확실한 결과를 가진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그 성과는 상당 부분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산된다.


결국 연구개발을 시장에만 맡길 경우,

개별 연구자의 투자 유인은 충분히 형성되기 어렵고

연구개발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보다 적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2. 기초연구 투자의 불확실성

리처드 넬슨은 1959년 논문에서 기초과학 연구의 경제적 구조를 분석했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기초연구의 사회적 수익(social returns)은 매우 클 수 있지만, 민간이 얻는 수익은 낮을 수 있다.
“The social returns from basic research may be very high even though the private returns are low.”
(출처 : Nelson, Richard R. 1959. “The Simple Economics of Basic Scientific Researc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67(3): 297–306.


즉, 민간 기업이 기초연구를 수행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뜻이다.

기초과학은 특정 기업의 제품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속 혁신의 토대가 된다.


문제는 기업이 사회적 수익이 아니라 자신이 회수 가능한 수익을 기준으로 투자 결정을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장에만 맡길 경우 기초연구는 사회적으로 최적 수준보다 적게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민간에만 연구개발을 맡겨 놓을 순 없다.


3. 기술과 경제성장의 관계


여기서 질문은 한 단계 확장된다.

그렇다면 바로 수익이 나지 않는 기초연구를 왜 해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경제성장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내생적 성장 이론을 통해

경제성장의 중요한 원천이 지식과 아이디어의 생산이라고 설명했다.

로머의 따르면 기술 발전은 자연스럽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지식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재화와 달리 비경합성, 누적화의 성격을 가진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쓴다고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들지 않는다(비경합성).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또 다른 아이디어의 기반이 된다(누적화).


로머는 경제성장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경제주체들의 의도적인 투자 결정에서 발생하는 기술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Growth in this model is driven by technological change that arises from intentional investment decisions made by profit-maximizing agents.”
(출처 : Romer, Paul M. 1990. "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8(5): S71–S102.)


즉, 기술 발전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생산 활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단순한 자본 축적의 결과가 아니다.

지식이 얼마나 빠르게 생산되고 축적되는가에 의해 장기 성장률이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미래 경제성장의 경로를 바꾸는 투자가 된다.


이 지점에서 과학기술 투자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구조적 성장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4. 왜 국가는 과학기술 연구에 투자하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는 자유기업 체제에서는

발명과 연구가 체계적으로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특징 때문이다.
① 연구개발에는 높은 위험이 따르고,

② 연구 성과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확산되며,

③ 지식은 완전히 독점하기 어려운 정보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기업이 큰 돈을 투자하여 투자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다.

에로우는 이를 자유기업 체제가 발명과 연구에 대한 '하향 편향(downward bias)'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나 비영리 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

실제로 기초연구의 상당 부분은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에서 수행되어 왔다.


국가는 연구의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시키고,
장기간 성과가 나타나는 기초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새로운 지식이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든다.

이러한 역할 때문에 국가는 과학기술 연구에 투자한다.


5. 정리

우리는 과학기술에 세금을 쓰는 이유는 과학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장 메커니즘만으로는 그 중요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다.

연구는 불확실하고, 성과는 완전히 전유되기 어렵다.


시장은 돈이 되는 연구를 선택하지만, 사회는 반드시 필요한 연구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태계 보존 기술, 지진예측연구·재난기술 , 희귀질환 연구, 기후변화 등의 분야들이 그렇다.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공공투자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경제적 구조에서 도출되는 정책적 귀결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낸 세금이 왜 과학기술 연구에 쓰이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