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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Feb 15. 2021

천박하지만 달콤하고 부드러운

김구라식 맛 표현이 가능한 디저트의 세계

정말 싫지만, 맛 표현은 길티플레져


김구라의 개그를 싫어한다. 기-승-전-돈으로 연결되는 그의 이야기 구성이 싫다. 예컨대 자작곡을 부르는 아이돌 가수에게 대뜸 “저작권료가 얼마나 들어오냐”를 묻는 태도라던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올리며 돈을 표현하는 모습이 불편하다. 그러나 마치 길티플레져처럼 웃게 되는 김구라의 개그가 있다. 그의 ‘맛 표현’이다. 김구라는 맛집을 표현할 때, ‘사장님의 손목에 금붙이가 많고’, ‘월세가 기백만 원’이라고 말한다. 정말 웃고 싶지 않지만, 그의 맛집 표현에는 상당히 동의하기 때문에 몰래 숨어 웃는다.


내 생각에 맛을 돈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표 분야는 바로 디저트다. 디저트는 정말 좋은 재료에서 훌륭한 맛이 나온다. 식물성 생크림은 1L에 3,500원이면 구입할 수 있지만, 동물성 생크림은 그 두 배가 넘는다. 또 동물성 생크림은 디저트의 외형을 유지하는 시간도 촉박하다. 만약 맛있는 동물성 생크림케익을 구입했다면, 적어도 한 시간 안에는 집에 도착해야 그 맛을 유지할 수 있다. 향을 주는 재료도 마찬가지다. 디저트에 많이 쓰는 바닐라빈도 인도네시아 출신보다는 타히티 출신이 월등히 좋은 맛을 낸다. 그래서 마카롱이나 케익에 타히티산 바닐라빈을 사용한다는 디저트가게의 제품은 늘 믿고 먹는다. 나는 맛있고 훌륭한 디저트를 먹었을 때, ‘비싼 맛’이 난다고 표현한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김구라식 맛 표현의 절정이다.


사브레쿠키 굽고 알았습니다. 베이킹엔 비싼 재료가 최고..


물론 이 개똥철학은 그동안 엥겔지수를 높여가며 많이 먹어 온 내 입이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홈베이킹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최근, 이 결론에 더 힘을 싣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사브레쿠키 굽기가 시작이었다. 사브레(정확히는 사블레 디 아망)는 홈베이킹 기초 중의 기초로, 밀가루와 설탕, 버터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비싼 맛‘을 위해서는 반드시 아몬드가루가 들어가야 한다. 보통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레시피에는 박력분과 아몬드가루가 2:1의 비율을 유지한다. 이렇게 구운 1차 사브레쿠키에서는 정말 딱 홈베이킹 맛이 났다. 카페에서 팔면 한 번 먹고 두 번은 사지 않을 맛이다. 그럴 땐 비싼 재료를 추가하면 된다. 향미가 좋고 값이 더 나가는 버터와 아몬드가루가 킥이다. 레시피보다 버터를 10그람 더 넣고, 박력분과 아몬드가루의 비율을 1:2로 반전했다. 결과는..? 백화점에서 파는 맛! 천박한 맛 표현의 최상급이었다.


도대체 맛있는 디저트는 왜 밥값을 호가할까 가졌던 의문은 홈베이킹에 입문한 이래로 완전히 종식됐다. 비싼 재료에서 비싼 맛이 나오는 것을, 그 간단한 이치를 몰랐다. 이즈니버터를 사용한다던가, 깔리바우트 또는 발로나 초콜릿파우더를 쓴다고 공지하는 디저트 가게가 있다면 의심하지 말자. 재료와 맛에 진심인 곳이다. 디저트는 정말 김구라식 맛 표현이 적합하다. 마카롱으로 건물 세울 가게, 마진율 40%를 절대 넘기지 않는 베이커리, 사장님의 통장까지 달콤한 디저트 가게가 더 많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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