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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매댁 Apr 09. 2021

제 보호자입니다

수십 년 모르던 사이인데 말이야

태어나서 응급실을 세 번 가봤다.


첫 번째는 미국 유학 시절. 운전면허 따고 3개월 후, 시험 공부로 밤을 새고 처음 빗길을 운전하다 미끄러져 3중 추돌 사고를 내고 기절했을 때.

두 번째는 한국 집에 돌아 온 후. 밤 새 두드러기가 나 잠 못이루다 새벽에 엄마를 깨웠을 때.

세 번째는 지난 주말이었다.


힙하다는 문래동의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가다 몇 정거장 일찍 내려 걷기로 했다.

마침 낮에 잔뜩 오던 비가 그쳐 깨끗한 밤 공기에 더욱 상쾌한 마지막 산책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렇고 재앙의 직전은 늘 기분이 괜시리 좋더라)


"아이스크림 사줄까?"하는 곰서방의 말에 격하게 콜을 외치고 가게에 들러 나오던 길.

주욱-쿵.

가게 문 앞에 철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비에 젖은데다 미끄럼 방지 테잎이 닳아 발을 내딛자마자 미끄러진 것이었다. 발목이 완전히 꺾였고, 아플 때 눈 앞에 별이 보이는게 어떤 기분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재앙의 경사로

고통이 심상치 않아 택시를 타고 1km도 떨어지지 않은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울기 직전의 내가 한 다리로 서있는 동안 남편이 후다닥 들어가 휠체어를 끌고 나왔다.

코로나19 때문에 응급실 건물 밖 천막에서 열 체크와 접수를 하고 있었다. 온 몸이 방역복에 꽁꽁 쌓인(입었다기 보단 쌓였단 표현이 어올렸다) 간호사가 나와서 열을 재고, 코로나 증상이 있는지 문진을 하고, 내 신분증을 받았다. 그리고 곰서방에게도 작성할 서류를 내밀며 물었다.


"보호자세요?"

"네. 남편이예요."


그리고 엄마랑 응급실을 갔을 때처럼, 원래 그렇다는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접수와 검사가 진행되었다.


엑스레이를 찍을 때, 약을 처방 받아올 때, 신발을 벗고 신어야 할 때 남편은 일벌처럼 바삐 움직였다.

하필 그때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화장실에 넣어놓고, 문을 닫아주었다가, 내가 일을 마치자 휠체어에 다시 앉혀주었다.


이제 나의 보호자는 부모가 아닌 저 남자라는 것을 처음 실감한 순간.

수십 년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상관 없이 살아오던 사람이었는데, 평생을 함께하자는 약속 하나로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라는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당연하지 않은 보호자의 역할을 곰서방은 너무도 당연하게 충실히 해주고 있다.

깁스를 하고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지금. 남편은 삼시세끼 준비해놓고 출근하고, 내가 찾을만한 것들을 손 닿는 곳에 꺼내어 놓고, 저녁엔 집안일을 해치우고, 카페에 못가는 날 위해 일주일치 캔커피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몸이 낫느라 풀가동 중인지 꼼짝 못하는데도 저녁만 되면 잠이 쏟아지는데, 옆에서 지친 얼굴로 자는 남편을 보면 괜시리 맘이 콕콕 아려온다.


얼마 전 주민등록 초본을 떼니 "세대주와의 관계"란에 평생 우리 아빠의 자녀이던 내가 2년 전부터 곰서방의 배우자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 사고 후 아빠는 곰서방에게 “손 많이 가는 딸이라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곰서방은 내가 선택한 내 가정의 가장이다. 그 무게와 의미를 (아픈 발목의 대가로)진하게 깨달았던 이번 주.

결혼이 주는 수많은 특별하고 마법같은 순간 중 하나.


고마워 곰서방. (고마운거 아니까 생색 조금만 덜 내줬으면 좋겠어)


그날 밤 응급실에서 가장 화사했던 나. 그날 외식이 얼마나 신났었는지와, 재앙 직전엔 매우 행복하다는 클리셰를 그대로 보여준다.


P.S. 다이나믹 응급실에서 밤새 고생하시는 의료진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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