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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PM Nov 20. 2024

글레디에이터2, 지옥문 앞에서 거장이 말했다.(스포)

2편을 더 감동있게 만드는 감독의 숨겨진 메세지


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있어
타락의 길에 들어서기 쉽다.



로마 건국신화 이야기를 쓴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 6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영화에서 핵심적 기능을 하는 대사가 된다. 주인공 루시우스가 검투사로 끌려갔어도, 황가의 후손임을 알리는 장치를 하고 나아가 엔딩 연출을 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위 대사가 나오는 루시우스의 로마 검투 데뷔전은 루시우스를 연기한 폴 메스칼이 말하길 촬영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위 대사는 감독이 영화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직결될 수 있다.



자료출처: 3편 나온다고..? 당신이 몰랐던 《글래디에이터 II》 속 숨은 디테일 해석 총정리 - YouTube





리들리 스콧은 2차 세계대전을 겪고 90세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미 전쟁이라는 지옥을 경험했고, 고령의 나이로 지옥의 문 앞에 와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글레디에이터 2를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이 그의 메세지를 추측한다.



나의 분노가 아닌 타인의 자유를 위해



거장이 지옥의 문 앞에서 말하는 바는 이 시대에 절실하다. 거장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옥의 문 앞에 와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로마처럼 세상을 호령했던 미국의 힘은 약해졌다. 경제는 풍전등화의 위기며, 전문가들은 미중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게 더 이상할 수 있다 말한다. 우크라니아 러시아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전쟁은 끝날 기미조차 안 보인다.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트럼프의 오른팔 머스크는 인공지능의 위협을 말하며, 학자들은 이제 기후위기를 막기 힘든 수준까지 왔다 말한다. 미청문회에서는 전직 해군 장성들이 UFO가 실존한다 강력히 주장한다.



리들리 스콧은 지옥문 앞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될지 글레디에이터 2로 말해주는 것 같다.  



20세기 사람들은 세계대전 등의 지옥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도 외면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 영국의 수상 챔벌린은 1차 세계 대전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1세기 사람들은 합리적 선택을 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영화에 녹아있지는 않을까? 물론 많은 분들은 내가 쓸 때 없이 확장해석 한다 여길 것이다.



실제 이러한 생각은 나의 망상일 수 있다. 영화 전개가 감정적으로 매끄럽지 않고, 매우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이 설득력 있다 생각한다. 감독의 삶, 시대 상황 외에도 영화의 인물 설정과 상황 개에서 개연성이 느껴지고, 감독의 메세지가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1. 현실적인 캐릭터



1) 루시우스의 심경변화는 자연스럽다.





많은 분들은 말한다.


왜 루시우스가 갑자기
어머니와 로마를 위해 싸우지?



내가 보기엔 루시우스라는 캐릭터의 심경변화와 행동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먼저 루시우스는 이미 산전수전을 겪은 영웅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막시무스가 황제(호아킨 피닉스)에 복수하는 충격적인 순간을 눈앞에서 목도한 황제(리처드 해리스)의 손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권력다툼 때문에 피신생활을 하게 된다. 왕자님처럼 살던 소년이 목숨을 구걸하며 로마에서 아프리카 누미디아까지 도망친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은 현실은 지옥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모두가 그를 왕자대접 해주다가 모두가 그를 사냥감 쫒듯이 추격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겨우 발붙일 장소를 찾았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로마의 상륙작전 타깃이 된 누미디아의 마지막 남은 자유 도시다. 그리고 외지인인 그가 공동체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이병헌이 연기했던 캐릭터 이상의 능력자라 볼 수도 있다. 루시우스는 이미 막시무스보다 험난하면 험난했지 덜하지 않을 수 있는 역경들을 이겨낸 영웅과도 같다.



영웅은 결국 다른 군인들과 함께 전쟁포로가 되어 검투사가 된다. 그리고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과 마찬가지인 어머니 루실라와 만난다. 이때 그의 절규가 기억난다.



GET OUT!!!!!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웅 루시우스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로마의 꿈을 추구한다. 많은 분들이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심경변화일 듯한데 영화적으로는 감정선이 굉장히 잘렸어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의 이해를 위해 논리적인 설명보다 고 김수미 선생님의 뮤지컬 친정엄마 쇼츠를 '꼭' 보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링크 : [김수미 엄마와의 이별 - YouTube]



엄마 왜 날 낳았어?
이렇게 고생만 시킬 거, 왜 날 낳았어?
 엄마가 나 안 낳았으면 내가 이 고생 안 하잖아!



쇼츠의 첫 대사다. 이 말을 한 캐릭터는 결국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딸 얼굴도 안 보고가.. 엄마 가지 마.. 잘못했어..



이러한 극적인 심경변화는 단순한 연출이 아니다. 내 주위에 어렵게 성장한 사람들은 끔찍한 부모를 두었어도 마음 한편에 부모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말한다.



루시우스도 그러지 않았을까? 왕자로 살다가 지옥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일 당장 머리가 잘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지옥을 선사해 준 부모가 마지막 순간에라도 내 삶을 이해해 주고,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충분한 시간을 통한 심경 변화의 묘사가 안 되었을 뿐이지 개인적으로는 영웅 루시우스의 태도 전환을 자연스럽다 여긴다. 이러한 반전 들기를 도왔던 반역 모의라는 장치 역시 개연성이 있고, 감독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2) 혁명이 실패한 이유


 

영화에서 아카시우스의 장군(페드로 파스칼)과 루실라(코니 닐슨)의 혁명이 실패로 끝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타인의 자유가 아닌 자신의 공포와 분노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혁명의 핵심이었던 아카시우스 장군은 5천 명을 지휘하는 군단장이다. 그는 사령관임에도 불구하고 상륙작전 거의 최전선에서 중년의 나이에 병사들과 함께 돌격한다. 또한 전쟁에서 패한 사람들과 로마시민의 아픔에 분노하여 혁명을 모의할 배포도 있다.



이처럼 용맹한 장군이 전략, 전술, 개인 전투능력 모두가 특출 난 케이스는 전쟁사에서 극히 드물다. 1편의 막시무스처럼 폼나게 묘사가 안되었을 뿐이지 영웅 중의 영웅인 것이다.



그는 뛰어난 장군이었지만 루실라와 함께 로마의 꿈보다 자신의 공포와 분노를 우선했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루실라는 1편의 교훈을 잊었는지 2편에서도 혁명에 관한 정보보안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개선장군인 아카시우스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민감한 내용이 언급된 뒤 하인에게 나가라고 말한다. 또한 루시우스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소식에 공포에 질려 하인이 듣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밀실이 아닌 곳에서 아카시우스에게 혁명계획을 무리하게 앞당기자 요구한다.



심지어 자신은 로마의 꿈보다 아들 목숨이 더 소중하다는 뉘앙스의 대사를 하기도 한다.이러한 바보짓에 아카시우스는 함께 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만큼 판단력이 흐려졌던 걸까?



전쟁 능력과 별개로 그는 매사에 전략적이고 냉정한 마크리누스와 비교된다. 검투 경기를 관람할 때 아카시우스의 표정은 침착하지 못하다. 그러나 마크리누스 연기를 한 덴젤 워싱턴은 무표정으로 눈을 번뜩이며 상황을 분석한다.



3) 전형적인 권력자형 소시오패스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비공식적인 일부 집단을 말한다. 심리학자 혹은 정신과의사들이 유튜브에 소시오패스 특징을 말하는 것을 보면 덴젤 워싱턴의 연기와 매우 흡사하다.


마크리누스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버스런 폭소를 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목적을 위한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긴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섬세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타인을 공포로 조종하려 든다.



영화 초반부 루시우스가 말한 ".. 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있어 타락의 길에 들어서기 쉽다.."라는 시만 들었는데도 그의 출신에 강한 의심을 갖는다. 또한 루시우스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 루시우스, 루실라, 로마에서 모르는 정보가 없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질문하며 그들을 떠보고 포위망을 좁혀간다.



결국 그는 루시우스가 황족이라는 가설을 증명했고 루실라 부부의 반역 음모를 황제에게 알린다. 그리고 황제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최고의 권력을 가진 뒤 그가 하는 행동은 섬뜩했다.



원로원 회의 그러니까 국회쯤 되는 곳에서 국회의원 모두가 보라고 원탁 위에 잘린 황제의 머리를 올려놨다. 그리고 손으로 머리를 20도씩 돌리며 국회의원 모두에게 '정면으로 보라며' 공포심을 심어준다. 그리고 마크리누스에 포섭당한 의원을 필두로 원로원 모두가 나치 마냥 손을 뻗어 그의 권력에 동조한다.



그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검투경기라는 지옥에 밀어 넣은 루시우스의 할아버지 황제의 탓이라 말한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이 입은 손해에 반드시 복수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은 대략 4% 정도라고 구글검색에 나오나 권력자 중에선 비중이 높다고 한다. 소시오패스라는 성격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한 CEO가 30%가 된다는 연구를 소개하는 전문가도 있다.



현실을 영화라는 거울로 보여주는 듯한 글레디에이터 2의 로마 상황은 마크리누스가 집권하고 급변한다.



2. 현실적인 상황전개



공포에 조종당하던 로마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위가 일어나며 콜로세움의 관객과 근위병들이 싸우기 시작한다. 모두가 자신의 공포와 분노의 화염 끄려고 급급했다.



내가 생각하는 감독의 메시지인 '나의 분노보단 타인의 자유를 위해'와 멀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서양의 유명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식사시간에 손잡이가 긴 숟가락으로 음식을 퍼서 자신의 입에 가져한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음식을 서로의 입에 가져간다.


사진 출처: Heaven Hell – ERIC KIM



지옥의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로마의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일을 어렵게 만든다. 이에 비해 영웅 루시우스가 전직 군인도 포함한  검투사들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이 아닌,
검투장 밖에 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



영화의 엔딩도 이에 충실했다. 수도 수비대와 혁명군의 격전이 일어나기 직전 사람들은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각군의 지휘자들은 루시우스와 마크리누스의 1:1 싸움 결과를 기다렸다. 정치적 판단일 수도 있지만 천국에 있는 사람들의 식사와 다를 바 없다.



관객들은 엔딩의 짜릿한 혈투가 없다 아쉬워한다. 하지만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 리들리 스콧이다.



고령의 그가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글레디에이터 2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동은 짜릿함이 아닌 침착함이다.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분노가 아닌 타인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일을 쉽게 만들뿐더러 천국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우리는 매주 월요병을 겪으며 직장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의 돈을 내 주머니에 채울까 고민한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대엔 더 그렇다.  경제위기뿐만이 아니다. 지옥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21세기엔 국지적인 전쟁 말고도 미중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코로나보다 더한 질병이 퍼질 수도 있다. 머스크가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폭주할 수도 있고, 인류를 멸종시킬 기후재앙이 올 수도 있다, 에일리언을 만들 법한 외계 문명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옥의 문 앞에서 리들리 스콧은 '리가 어떤 일을 해야' 살아서도 천국처럼 누리며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글레디에이터 2로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1편처럼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말고 2편은 영화를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생각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초반부 상륙작전에서 루시우스와 아카시우스가 투구를 쓰지 않는 것도 작위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힌트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1편 초반에서 막시무스가 게르만 족을 향해 기병돌격 하는 장면에서는 그는 투구를 썼다.



막시무스가 싸우기 전에 했던 연설의 일부를 적으며 글을 마친다.



우리가 살아서 한 일은
죽은 뒤에도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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