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AI와 메타버스 관련된 책들을 구경하다 댓글 하나를 보고 풋! 웃음이 났다.
"부자들은 이런 어려운 책을 진짜 다 읽나요?"
작년 가을에 웬 (Wen, 제품 팀장, 디렉터, 홍콩인, 가명)이 회식 자리에서 했던 질문이 오버랩됐다.
"원숙, 나는 도 (Do, 나의 보스이자 우리 회사 최고 경영진 중 한 명)가 평소에 뭘 하는지 정말 궁금해. 일은 전부 우리가 하는데 그는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지? CEO는 출장 다니는 거 말고 하는 일이 뭐야? 할 수 있다면 한번 24시간 동안 구경하고 싶다니까."
질문은 Do를 향하고 있었지만 실은 직속 상사인 나를 은근히 겨냥한 질문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큭큭 웃어줬다.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일은 내가 다하는데 너는 가끔 출장 와서 몇 마디하고 가는 게 일이니, 얼마나 편하니?'가 아니었을까?
지난 연말, 모처럼 인턴부터 디렉터들까지 우리 사업부 직원들이 죄다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아무 말 대잔치의 일환으로 "당신에게 딱 한 가지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은가?"는 질문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 나온 얘기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타임슬랩', '기적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게 되기', '다음 주 복권 번호 알아내기',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다시 살려내기' 등 다양했다. 서로 '오!! 그래, 나도 나도!' 하면서 공감해 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많은 텍스트를 훨씬 빠르게 읽고 꽤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어."
"...???"
아... 너무 진심을 말해버렸다. 테일러 스위프트로 다시 태어나기 (우리나라로 치면 이효리로 살아보기?) 이런 얘기나 하고 말 것을.
다시 웬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웬이 나에게 "너는 우리한테 가끔 보고 받으러 오는 거 말고 대체 뭘 하니?"라고 직접 묻는다면 대답해 줄 수 있다. "읽어. 아주 하루 종일 읽지. 이메일을 읽고, 각종 보고서를 읽고, 온갖 새로운 기사와 아티클을 읽고, 읽고 읽어. 아무리 읽어도 더 읽어야 하는 게 산더미야."
알라딘 서점에 귀여운 댓글을 달아주신 분에게 (내가 부자는 아니지만) 감히 답을 드리자면 "네, 아마도 부자들은 이런 책들을 많이 읽을 거예요.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정말 다행인 것은 세상엔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고, 다소 억울한 점이라면 꽤나 긴 독서 목록을 보유했다는 이유 때문에 간혹 "넌 참 열심히도 산다"는 동정 어린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려고 읽는 게 아니라 읽어내는 게 직업이기 때문에 읽는다.
다양한 관점의 보고서와 전문가 아티클과 시대의 동향을 알려주는 분석 기사와 깊이 있는 통찰의 책들을 계속 읽어나가지 않으면,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의 비즈니스에 도움을 주는 (또는 최소 해악을 끼치지 않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고, 일이 막혀서 도움을 요청하는 다양한 부서의 직원들을 제대로 도와줄 수가 없다.
예전에 김미경 강사님이 하신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평소에 인풋 input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에게서 나오는 아웃풋 output이 후진 건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 내가 아침에, 퇴근 후에, 주말에도 계속 뭔가를 읽고 있는 건, 운동선수가 경기장 밖에서도 훈련을 계속하는 것과 같다. 운동선수에게 "아니 왜 경기 타임도 아닌데 운동을 하죠?"라고 묻지 않듯이, 나에게서도 의혹을 거두어 줬으면 좋겠다.
"평소에 대체 뭐 하나면요 주로 읽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읽는 게 아니라, 읽지 않으면 금세 후져지는 시대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
대문 이미지, Hotel Lobby by Edward Hopper (1882–1967), 1943.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