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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Jun 11. 2022

결혼한다고? 그럼 퇴사해

 결혼한 여자는 퇴사해야 하는 회사 규정


"너, 그렇게 빨리 결혼 안 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야."

"뭐, 거창하게 인생까지... 음, 좋아하는 일은 실컷 했겠지."

"니 동기랑 선배들도 더 좋은 신문사 경력기자로 갔다며?"

"그랬지. 남자들이니까."

"맞아. 그 시절 우린 서러운 여자들이었지. 요즘 애들이 그걸 믿을까? 여자는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규정과 암묵적인 밀어내기를?"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들고 율동공원을 산책하던 수경과 선주가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이제는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진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래가 아닌 과거를 자꾸 뒤적이는 걸 보니, 그녀들도 어쩔 수 없이 나이 들어가는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흘러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심해도 너무 심한 과장이다. 그녀들이 싱싱한 젊음으로 가득한 20대를 거쳐, 삶이 원숙해지는 30대와 40대 그리고 여유롭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50대를 지나 살짝 억울한 노년기인 60대에 접어드는 동안,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수경이 100일 만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시부모와 시누이를 모시며 남편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동안 유명 식품회사 연구원이던 선주는 우아한 직장인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대학시절 짝사랑했던 선배를 같은 직장에서 만나고, 그 선배와 썸을 타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1989년 7월. 선주는 마침표를 찍듯이 결혼을 결정했다.   

  그 시절 여자의 결혼은 곧 경력단절을 의미했다. 연구원으로 경력을 한창 쌓아가던 선주도 부장에게 청첩장과 사직서를 동시에 내밀어야 했다. 어떻게든 회사에 남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시댁에서도 선주가 얌전히 살림하면서, 남편 내조나 잘해주기를 바랐다. 그때는 그랬다. 아무리 서울대를 나왔어도 의사나 약사처럼 전문직이 아니면,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아이 낳고, 살림하면서 남편 내조를 잘해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회사나 은행처럼 여자가 결혼 후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여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혼과 동시에 일을 포기했다. 여자가 집안일을 독박으로 해야 했던 시절이라 더 그랬다. 외벌이로도 가정 경제가 잘 돌아가던 호시절 탓도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수경이 넌 정말 아까웠어. 참, 어렵게 기자가 됐었는데."  


  커피를 마시던 선주가 새삼 안타까운 얼굴로 수경을 바라보았다.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르는지, 수경의 표정이 스산해졌다. 수경의 어린 시절 꿈은 기자였다. 수경은 길을 돌아 돌아 어렵게 기자가 됐고, 겨우 기자 2년 차에 접어든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아 들었다. 양가의 불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하던 중이었다. 평소 그녀가 믿고 따랐던 부장이 '결혼하면 여자는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웠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언론사도 여자들은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수경이 다녔던 작은 신문사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을 앞세우며 그녀를 해고했다. 기자의 꿈을 안고 공채를 거쳐 어렵게 입사한 곳이었다. 지금도 언론사 입사는 언론고시라 불릴 정도로 어렵지만, 당시는 더 심했다. 특히 여자에게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웠다.  


  우선 일을 할 신문사, 방송사가 거의 없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며 많은 언론사를 통폐합해버린 탓이었다. 그나마 남은 신문사, 방송사의 공채 조건에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만 응시가 가능하다는 조건이 들어가 있었다. 더 최악이었던 건, 수경이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KBS는 아예 공채가 없었다. 여자를 뽑는 방송사는 MBC 아나운서뿐이었다. 모집공고부터 '군대를 다녀온 남자'만 뽑는다는 말이 아나운서만 빼고 다 적혀있었다. 잡지사들도 상당수는 그런 규정을 내세웠다. 그래도 미친 척,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경은 공채를 따라다녔다. 당연히 붙여줄 리 없었다. 아무리 필기시험을 잘 봤어도 신문, 방송사들은 여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잡지사는 일간지랑 좀 다를지도 몰라. 시험을 잘 보고, 논술을 잘 쓰면 혹시 알아 붙여줄지? 설마 실력이 좋은데도 안 뽑겠어?"      


  수경은 언론사 스터디를 함께 하던 친구들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났었다. 글 잘 쓰고, 상식 풍부하고 영어까지 잘했던 그녀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만 응시할 수 있다는 언론사 입사 규정만 없었다면, 당당하게 공채에 합격할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공채를 통과하고 기자가 된 건 그녀가 아니라 함께 스터디를 하던 남자 친구들이었다. 

  수경은 차선책으로 잡지사 공채에도 응시했다. 유명 잡지가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여자인 데다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었던 그녀는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은근슬쩍 자만했던 그녀는 코가 납작해져서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녀에게 부족한 2%가 무엇이었을까 고민이 깊어갈 무렵, 수경은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신문기자 공채광고를 발견했다. 모집공고에 '군대를 다녀온 남자'만 뽑는다는 규정이 없는, 기적 같은 공채광고였다.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수경이 다녔던 신문사는 해직기자들이 모여서 창간한 전문지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기보다 진정한 기자를 찾는 신문사였다. 수경은 당장 공채에 응시했고, 수석으로 합격했다. 신문사가 집과 멀다는 것만 빼고는 다 좋았다.  재정도 든든했다. 월급도 대기업보다 많았고, 취재비도 넉넉했다. 당시 기자들이 관례처럼 받던 촌지도 절대로 받지 말라며 기자의 프라이드를 잔뜩 심어준 곳이었다. 선배 기자들은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웠고, 동기들은 서로를 아끼며 윈윈 하는 분위기로 일했다. 그곳에서 수경은 기자 경력을 쌓고, 선배들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 했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그녀의 모든 것이 부정당했다. 맞서서 싸워야 했지만, 수경은 투쟁을 벌일 정도로 용감하지 못했다. 이미 양가를 상대로 결혼 투쟁을 벌이느라 지친 탓도 있었다.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큰 파도를 넘으며, 그녀는 잠시 자만했다. 


  "흥.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아."

 

  수경은 욱하는 심정으로 해고 통보를 받아들였다. 형식은 그녀가 결혼을 사유로 사직서를 쓰는 것이었다. 사직서를 내며 수경은 '결혼하고 한숨 돌린 뒤, 다시 일자리를 찾자'라고 생각했다. 2년 정도 경력을 쌓았으니 분명 어딘가에 그녀가 일할 곳이 있을 거로 착각했다. 결혼이 얼마나 그녀 인생의 큰 걸림돌이 될 줄, 몰랐기에 저지른 실수(?)였다. 결혼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해놓고도, 바보 같은 수경은 결혼한 여자가 다시 직장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정말 몰랐다. 순진해도 너무 순진한 영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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