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한 삘릴리 Aug 20. 2022

새아가, 출근 전에 집안일 다 하고 가렴

  "윤 기자, 잘 지내고 있어?"


  그날이 그날같이 무료하게 흐르던 어느 날,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수경이 다녔던 신문사 광고국에 근무하던 선배였다. 회사 다닐 때는 별로 친하지도 가깝지도 않던 사이였으나, 선배는 그녀가 결혼한 후에도 종종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특유의 친근함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싸였고, 아무리 처음 만난 사이라도 말문을 열기 시작하면 5분 안에 학연, 지연으로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기적(?)의 남자였다. 게다가 무슨 인연인지 그는 수경의 시누이와 건너 건너로 아는 사이였고, 시부모님과는 동향이었다. 정말 그는 소문난 마당발이 분명했다. 선배는 이런 친분을 앞세우며 가끔 수경에게 연락을 해왔다. 수경이 결혼하고, 신문사 사람들과 왕래를 끊었을 때도, 그는 큰오빠가 여동생을 챙기듯  종종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곤 했었다. 


  "윤 기자. 혹시 다시 일할 생각 있어?"

  "일이야 늘 하고 싶죠."


  수경의 속내를 읽은 선배는 얼마 전에 창간한 전문 일간지를 소개했다. 공채로 기자를 뽑고 있지만, 믿을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물론 수경이 결혼했고,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수경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제안이 미치도록 반가운 동시에 묘한 패배감이 몰려왔다. 자신의 한계를 봐버린 패배자처럼 씁쓸했다. 수경이 혼자 고군분투하며 일자리를 찾아다닐 때는 꿈쩍도 않던 육중한 돌문이 스르르 너무도 쉽게 열린 현실이라니!  참 허망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붙잡고 끙끙거렸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루해 보여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공정해야 할 공채에서 결혼을 이유로 거부당하던 그녀가 선배의 추천을 등에 업자마자 어려운 '취업의 문'을 무사통과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선배의 추천은 그녀가 재취업에 실패한 것이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 같았다. 


  그 사실이 그녀를 서글프게 했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못됐다. 수경은 선배가 내민 손을 얼른 붙잡아야 했다. 선배가 추천한 대로 새로 창간하는 신문사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했고, 그 자리에서 경력기자로 채용됐다. 


  "뭐? 새아기 네가 취직을 했다고?"

  "네. 윤재는 어머니가 봐주실 거죠?"


  수경은 시어머니가 누구보다 그녀의 재취업을 반길 거로 생각했다. 시어머니 자신도 교사로 복직하려다가 시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된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고, 평소에도 버릇처럼 "여자도 자기 일이 있어야 한다. 남자들이랑 똑같이 대학 나와서 살림만 하는 건 국가적인 낭비다"라며 딸이건 며느리 건 일을 한다면 언제든 지지하고 도와주겠다고 호언장담 했었다. 강 여사는 며느리는 무조건 살림만 잘하면 된다던 그즈음 시어머니들과 달리 며느리의 일을 존중해주는,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었고, 수경은 그런 시어머니를 내심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경의 취직 소식을 들은 강 여사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시어머니에게 축하 인사를 기대했던 그녀는 당황해 저절로 시선이 흔들렸다.


  "네가 나가면 집안일은 누가 하라고?"

  "네?"

  "내가 어떻게 집안일하면서 윤재까지 보겠니?"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저는 어머니가..."

  "너, 일하고 싶으면 집안일 다 해놓고 나가라. 출근 전에 밥하고, 세탁기 돌려놓고, 집안 청소 다 해놓고 나가. 못하겠으면 다 그만두고."


  배신도 이런 배신은 없었다. 같이 사는 막내딸은 물론이고 결혼한 둘째 시누이까지, 일하는 딸들을 가능한 편안하게 해 주려고 열성을 다해 보살펴주던 시어머니가 수경에게는 매몰차게 등을 돌린 것이다. 직장 다니는 딸들은 집안에서 손 하나 까닥하지 않게 도와주면서, 어렵게 일자리를 얻은 며느리에게는 집안일과 직장일을 병행하라는 시어머니의 이중잣대가 수경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서운했다. 시어머니의 불공평한 처사에 분하고 억울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물여덟 살 수경에게 시어머니 강 여사는 하늘같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시어머니 말 한마디에 며느리는 끔뻑 죽던 시절이었다. 


  어렵게 구한 직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시어머니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일하고 싶은 열망이 크기도 했다. 수경은 새벽같이 일어나 우렁각시처럼 집안일을 다 해놓고 출근했다. 퇴근 후에는 저녁밥을 먹기 무섭게 설거지하고, 아이를 돌봐야 했다. 시어머니가 저녁을 해놓은 날은 그나마 편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저녁을 해놓지 않으시는 날에는 외출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식구들 저녁을 준비했다. 수경이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동안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천하태평, 태평성대의 세월을 살았다. 시댁 식구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의 방패가 되어주었고, 그 기세에 눌린 수경은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시대 탓도 있었다. 바깥 일하는 남자는 집안에서 손 하나 까딱 않고 왕처럼 군림할 수 있지만, 여자는 바깥일을 하고 싶으면 집안일까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것이 국룰이었다. 그 시절 남편들은, 시부모들은 여자가 집안일에 소홀하면 당장 바깥일을 그만두라고 막무가내로 호통을 치곤 했었으니까.   


  그렇게 1년 반, 그녀가 다녔던 일간 전문지가 경영난으로 폐업할 때까지, 수경은 안팎으로 열심히 뛰며 일했다. 낙천적이던 수경은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했다. 일을 통한 성취감과 경제활동으로 이룩한 경제독립은 그녀의 자존감도 높여주었다. 비록 '내 딸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남의 딸은 콩쥐처럼 부려먹는' 시어머니 때문에 서운할 때가 많았어도 수경은 다시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했고, 아이가 세 살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