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이면
"한국 사회가 문제인 것은 '아파트공화국'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 '단지화전략'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정책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P.8
"주택상품으로서의 아파트가 단독주택에 비해 주거 환경 면에서 확실히 비교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비교우위의 주된 요인이 주거 형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주거지 환경의 차이, 즉 단독주택지와 아파트단지의 기반시설 차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P.9
"대다수 국민이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것은 아파트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다 아파트 단지가 갖는 이점 때문" p.9
"한국에서 도시 환경과 주거 환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들은 대부분 단지식 개발이 직접적인 원인이거나 적어도 문제를 심화하는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P.10
"한국 경제를 단기간에 급속히 성장시키고, 이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를 경영하기 위해 선택된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파트 단지 개발 정책이 파생시킨 수많은 문제들 역시 미처 통제하지 못한 실수로 빚어진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부작용을 무릅쓰고, 알면서도 감수한 '전략적 고려'의 산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P.10
"조금만 생각해보면 주범은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파트가 인기를 독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로 개발되었기 때문이고, 그 뒤에는 한국의 도시 공간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P.18
"아파트 단지는 다르다.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자족적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19
"일산 등 신도시로 개발된 곳을 보면 전체 개발 면적 중 주택용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못 미친다.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주택 건설용지의 두세 배에 이르는 땅에 각종 사회 기반시설을 갖추는 엄청난 공동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P.20
"도시 공공공간이 공원녹지와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들은 이를 사적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응한 것이 아파트 단지 개발이었던 것이다." P.21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팽창에 대응해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었다. 주택은 배후에 다양하고 많은 근린생활시설을 필요로 한다. 집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식당에서도 주방의 크기가 식당홀 크기에 버금가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답게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부대공간의 면적 또한 거주공간 못지 않게 넓고 좋아야 했다. 하지만 땅은 개인의 소유이기에 공공의 복리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임의로 수용개발할 수는 없다. 집은 부족한데 집지을 땅마저 모자라는 판에 배후 공간까지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시장의 영역으로 넘겨진다. 아파트 단지다.
"소필지 조직이 감소하면 도시 생태계가 파괴되고 도시 기능의 자율조정 능력이 약화된다." P.39
"도시의 경제활동 여건과 이에 따른 공간 수요는 끊임없이 변한다. ...... 문제는 이러한 자율조정이 대부분 소필지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P.40
그렇다면, 다세대(도시형생활주택)주택에서 가능성을 찾아야겠네요. 또는 자율주택정비사업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으로 지어지게 될 중규모 이하의 주택에서 시대적 상황(여건)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고요.
"아파트 단지 개발, 즉 단지화 전략이 본격화한 지 40년이 되었다는 것은 곧 몇몇 대형 건설업체가 수천 개 중소 건설업체의 일거리를 먹어치우는 일이 40년간 계속되었다는 뜻이다. ...... 전국 어디서건 대규모 단지 개발사업은 몇몇 대형업체들이 차지하고 소규모 건설사업의 절대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견실한 중소규모 건설업체들이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 견실한 중소건설업체들은 사라지고 건설업체라고 하기에도 곤란한 극히 영세한 업체들만 몇몇 일거리로 연명하고 있다. ...... 건설산업 양극화 현상 때문이다." P.44
"서울에 자리잡은 대형 설계업체 몇몇이 전국 설계 시장을 독과점하고 지역에는 속칭 허가방이라 불리는 영세 설계업체들만 남는 양극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소필지 건축사업 감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P.46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보면서 어느 설계사무실 소장님이 그랬다죠. "저게 모두 단독주택으로 지어졌어야 하는데..." 몇 천세대 아파트단지는 설계사무실 한두 곳에서 설계하겠지만, 같은 규모의 단독주택이라면 몇 백명의 건축가가 설계를 하겠죠. 훨씬 많은 건축가들이 밥벌이를 하며 다양한 집을 선보였을테니까요. 물론 집적의 효과가 떨어지기에 도심에서는 현실화되긴 어렵겠지만, 그만큼 설계(건설)시장이 양극화되어있고 그 안에서 획일화되다보니 동일한 아파트 유형만 자가복제 중이라는 현실을 알려주는 말씀인듯 하네요.
"한국 아파트가 넓고 밝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면 폭이 길고 깊이가 얕아서 집 안 전체가 햇빛을 받아 밝기 때문이다." P.127
"한국 아파트가 고층화로, 초고층화로 치닫는 이유는 ..... 단위주거 전면 폭을 길게 확보하려는 욕구다."P.128
"아파트 앞뒷면을 뒤덮는 발코니 설계 관행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아파트 경관의 획기적 개선이 불가능하다. ...... 과도한 발코니 설계로 도시 개발 밀도가 심각하게 증가 ...... 실제 용적률은 300%를 넘는 셈 ...... 처음부터 90㎡ 규모로 설계한다면 훨씬 자유롭게 합리적이고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발코니 확장 관행은 우리나라 주택 설계를 왜곡시키고 주거문화를 왜곡시키는 주범." P.137
발코니(외벽에서 지붕없이 톡 튀어나온 공간을 발코니라고 하니, 엄밀히 말하자면 문맥상 베란다가 맞는 명칭이겠네요)확장은 여러모로 문제가 심각하지요. 설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데, 확장형베란다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기형적인 공간이 설계되기 하니까요. 편법과 불법을 오가기도 하고요. 조세정의에도 맞지 않다는 저자의 말에도 깊이 공감합니다. 왜냐면 확장형베란다 면적인 전체 면적의 20%를 넘길 때도 있는데 그렇게 넓은 면적이 과세면적에서 아예 제외되니까요.
"공공임대주택은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복지를 보장하는 기능만 갖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주거문화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 역시 공공임대주택의 중요한 기능이다." P.150
공공임대주택을 집없는 사람을 위해 정부가 시혜를 배푸는 주택으로 오해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공공임대주택은 우리 시대가 나아가야할 주거문화의 첨병 역할을 하는 다소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주택유형일 필요가 있지요. 그래서 우리 시대에 집이란 무엇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공적자본을 투입해 반걸음 앞에서 길을 열어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이를 민간시장에만 맡겨둔다면 누구도 쉽게 도전하기 어렵겠죠.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새로운 주거유형에 도전할 민간업체는 아마 없을테니까요. 그런면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부족한 주거를 공급하겠다는 발상을 넘어서서 다음 세대의 주거유형(더 나아가 사회적 담론)을 여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토록 하겠다는 담대한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네요. 저자 주장에 크게 공감하는 대목.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주택 건설을 재개한 대한주택영단이 건설한 단독주택은 조선주택영단 주택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복도 대신에 마루 공간을 두고 모든 방을 온돌방으로 만들었으며 부엌 아궁이와 안방을 연결하는 등 재래 한옥의 구성 방식이 가미되었다. 특히 마루 공간은 당시 간간이 지어지던 외인주택의 거실 공간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도시형 한옥의 마당 및 대청과 유사한 성격의 공간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즉 마루 공간은 공간적으로 독립된 실이라기보다는 각 실들의 동선을 연결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주택 전체에 개방적 공간감을 확보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 마루 공간은 외인주택의 거실 성격과 도시형 한옥의 마당 및 대청 성격이 혼합된 새로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의 대한주택영단 주택에서는 이처럼 마루 공간을 중심으로 한 공간 구성 방식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P.199
"한국 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인 거실 중심 개방적 공간 구성방식은 자생적 주거 형식인 도시형 한옥과 외래 서구 주택 공간 구성양식이 서로 충돌하고 융합하며 성립한 것이다." P.200
아파트라는 주거 유형은 서구에서 수입된 개념에서 출발하지만 각론격인 평면타입은 우리의 주거문화(지리적 환경이 반영된)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북촌을 예를 들면, ㅁ자 또는 ㄷ자 모양의 도심형 한옥은 근대(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나타난 주거유형이고 가운데 중정형 마당의 쓰임 또한 그때 결정되었겠죠. 거기에 더해서 서구 주거유형(일본으로 부터 들어왔겠죠)이 포개지며 지금의 아파트평면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체로 우리 문화와 의식이 많이 반영되어있는 평면일테니 무작정 배척하기보다 지금 아파트평면을 잘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네요.
"한국 아파트는 가족 구성원, 즉 식구 사이에서는 프라이버시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 아래 설계된 집이다." P.205
"한국 아파트 평면은 가족원 사이의 프라이버시보다는 가족공동체에 훨씬 큰 비중을 두는 한국의 가족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평면은 다시 한국의 가족 공동체 문화를 재생산해내고 있다." P.206
우리나라 사람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죠. 여러 심리학 실험을 통해봐도 관계지향적인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해요. 달리 말하면 혼자서는 못살고 늘 여럿이 모여 지내는 걸 좋아한다고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이건 저의 추론입니다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사람들이 극심하게 모여살고, 전국을 놓고봐도 도시화율이 급격이 올라가는 이유인 듯도 합니다. 여튼 이렇게 모여살기 좋아하는 한국인이 거실을 가운데두고 (마치 판옵티콘 처럼) 모든 방을 그 둘레로 배치한 아파트 평면타입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더욱 한국인의 가족중심 문화, 관계지향적 성향에 승수효과를 더하지 않았나 싶네요. 저자의 통찰이 놀랍고 흥미로운 주장이에요.
"서울에서 제주까지 아파트 평면은 평형별로 통일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들과 다른 유별난 아파트를 사는 것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가장 보편적인 평면이라야 가장 쉽게 팔릴 것이기 때문이다. ...... 안방은 여전히 '현관에서 가장 멀리 남쪽에 자리한 제일 큰 방'으로 설계되고 있다. 한국 특유의 가족 생활양식을 반영한 한국 아파트 특유의 공간이었던 안방은 이제 생활 내용과 공간 형식이 일치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설계가 반복되는 현장이 되어버렸다." P.223
"설계 원칙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현관에서 가장 멀리 남쪽에 자리한 제일 큰 방'이라는 표준적인 설계 원칙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드레스룸과 부부 전용 욕실을 두어야 한다는 설계규범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저 '집에서 제일 큰 방으로 가급적 여러 가지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면 어떨까. 여전히 '현관에서 가장 멀리 남쪽에 자리한 제일 큰 방'일 수도 있고 북향방일 수도 있다. 혹은 집 앞뒷면을 관통하는 긴 방일 수도 있다. 거실과 통합한 대공간으로 만들수도 있다. 변화하는 가족 구성, 다양해지는 가구 형태 속에서 거주자들의 삶을 복합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방이면 된다. 원래 한국 '안방'이 복합적인 역할을 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P.228
저도 설계할 때 이게 고민이에요. 왜 가장 좋은 남향 안쪽 넓은 방을 '방'으로 해야하나.. 대체로 저는 거실로 하는 편이긴 해요. 거실은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그런데 거실을 안쪽 코너에 넣다보면 자연히 부엌이 따라 들어가게 되고, 그렇다보면 방은 복도를 통해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세대 내 공용공간이 넓어지고, 방이 작아지는 문제가 발생하죠. 현관과 가깝게 거실과 주방을 배치하고, 거실을 통해 각 방이 분배되도록 평면을 계획해야 세대내 공용공간을 최소화하면서 방을 넓게 설계할 수 있거든요. 복도가 길고 방이 좁은 평면안을 건축주는 싫어하죠. 방이 작다면서요. 창의력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기에 아무리 고심해봐도 구조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저자 의견에 공감하면서 설계를 조금 다르게 해보려고 하지만 건축주의 의식 개선 없이는 이런 평면안이 살아남기는 어렵죠.
"한국인들의 남향선호는 맹목적이고 몰가치한 짓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순응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P.237
음, 어쩐지.. 저도 그럴 것 같더라고요. 백 번 생각해봐도 남향집이 훨씬 좋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집은 남향이 진리죠.
"청약예금액에 따라 정해진 규모 범위에서 최대한 큰 규모로 아파트 평면을 설계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즉 전용면적 85㎡, 102㎡, 135㎡에 최대한 근접하는 규모로 아파트 평면을 설계하는 것이 일종의 설계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는 국민주택 규모 기준이 당초 85㎡이하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는 60㎡이하로 변경되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규모 기준이 되었다. 이것이 한국의 아파트가 지역과 업체를 불문하고 몇 가지 규모로 통일된 내력이다." P.246
"주택공급제도가 아파트 설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중요한 생활공간인 아파트의 공간형식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고민은 전혀 없이 그저 시민들의 중요한 부동산, 즉 재산이 아파트가 갖는 의미의 전부인 양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P.254
59(전용 18평), 84(전용 24평) 등등의 평면 타입으로 딱 나뉜 이유가 청약제도 때문. 헐...
"처칠이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and afterwards our buildings shape us)'고 말한 것은 푸코의 언급(1975)보다 한참 전인 1943년의 일이다." P.261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요. 사람은 무엇인가를 만들고, 만든 것으로부터 학습하고 적응하며 다른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또다른 차이나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차이와 반복'을 무한(?)반복하며 생존하는 호모사피엔스?인가.. 다른것 보다도,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건축(도시)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긴하죠.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계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근대적 생활공간 설계 패러다임이다. ... 근대적 생활공간의 설계는 생활 내용을 기능에 따라 분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P.271
용도지역제(zonnig)은 도시를 기능에 따라 구획함으로써 도시 전체적인 기능적 균형을 찾고자 했던 아이디어죠. 다만 용도지역이 가능해지려면 도시가 살아있으면 안되겠죠. 끊임없이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며 확장과 축소의 리듬을 일으키는 도시의 흥망성쇠가 어느 한 시대와 지역의 단면으로 잘라서 고정시켜 이해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전후복구를 위한 패러다임으로서는 막강한 아이디어였겠지만 4차산업혁명을 말하는 지금시대의 도시는 전방위적인 믹싱이 발생하는 듯해요. 시간과 공간이 종횡할 것없이 뒤섞이고 있는 듯 하거든요. 기능으로 규정하여 분류하며 관계를 임의로 설정하여 고정시켜 놓겠다는 발상은 이제 위험하기까지 하죠.
"한국에서 공간적 공공영역 확보를 위한 중심적 과제는 아파트 단지로 채워진 나무 구조 생활공간을 그물망 구조로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소집단화하는 단지식 개발을 해체하고 개체적 주체들이 주류가 되는 소필지 개발 방식을 회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도시개발 정책과 주택정책의 중심은 단지 개발에서 기성 소필지 조직 정비로 바뀌어야 한다." P.311
정책의 변화가 있긴 한데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이런 걸 건축가들이 먼저 공감하고, 건축가들이 이런 도시와 건축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이 건축가라는 '사람'의 권한과 의무, 책임에 더욱 집중된다면 더욱 빠르고 다방면으로 소필지개발이든 도시재생이든 가능해질 것 같네요. 지금 건축과 국계법 등은 여전히 땅(건물)에 코드화되어 있어서, 그것을 행하는 행위자(사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향을 보여주거나 비전을 제시하지 않지요. 건축법의 수행자는 결국 건축가일텐데, 건축가에게 건축법이란 내 직능과 역할에 인간적으로 와닿는 무엇이 아닌 그냥 겉도는 무엇처럼만 느껴지니까요.
"르페브르는 전문적인 도시계획이나 건축설계는 기존 정치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현실적 공간으로 구체화시키는 직능이라고 했다." P.340
매우 공감.
"일본의 마당형 발코니 회생기는 각별하다. '이런 상황에서 화재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다시 옛날의 경직된 법규로 돌아갈 것'이라 걱정하면서 '하루바삐 의미 있는 설계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는 일본 주택학자의 충정도 각별하다. 비슷한 상황에서 소중한 공간적 자산을 한낱 반짝 상품으로 전락시켜버린 한국의 무감각한 상황이 가슴 아프고 그 범죄적 무감각을 방조한 공범의 한 사람으로서 죄스럽다." P.354
마당형 발코니를 계획해보고 싶네요.
"아파트 발코니가 바뀔 때, 아파트 단지 담장이 바뀔 때 세상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P.355
베란다가 넓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해요. 꼭 세상을 바꾸기위해서라기보다, 그런 집에 살면 조금 다른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네요.
총평: 아파트의 문제와 가능성을 여러각도에서 설득력있게 파헤치는 책이네요. 건축가들 입장과 시각에서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어서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을 많이 할 듯. 정량화된 값어치를 다루는 세계에서 설계의 정성적 가치는 흔히 묵살되죠. 그러다보니 아파트 담론에서도 건축설계는 제외되는 듯해요. 무엇 하나 시원하게 문제는 이거야 저거야 말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인듯. 말해도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사람이 매우 적고. 그런데 저자의 글을 쭉 읽어보니 크게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이 글을 꼭 건축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읽으면 우리 아파트가 어떤 기원에서 출발했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어떻게 확산되며 변화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파트를 부동산(재화)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아파트는 어떤 집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아파트라는 재화를 다루는데 도움이 될 듯도 하네요. 어떤 추세로 아파트가 흘러갈 것인지 예측해볼 수 도 있고요. 너무 많이 발췌해서... 책이 팔려야 하는데.. 며칠 반응보고 발췌를 조금 덜어내든지 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