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Jul 10. 2020

"아파트같은 집이라는 당혹감과 수치심"

"아파트에 메슥메슥 멀미가 나기 시작한 것과 시골집을 헐어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거의 동시였다.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동안 나는 공사현장에 거의 들르지 않았다. 철근과 시멘트와 거대한 레미콘의 소음이 있는 공사판에 대한 천성의 조심성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시골집은 단순소박하고 불편하고 다소 남루한 집인줄 알았는데 실지로 짓고 있는 것은 콘크리트 옹벽 속에 온갖 복잡한 문명의 통로를 내장한 아파트의 축소판 같은 집이라는 데 대한 당혹감과 수치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집 짓는 것을 보지 않음으로써 집 짓는 동안이 가장 행복했다." 박완서 산문집 <두부> 중 '옛날'

편리한 집. 실내 공간이 넓어서 생활 전반을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집. 손 닿는 곳에 스위치와 손잡이가 있으며 칼같이 맞아 떨어지는 마감과 적재적소에서 은은하게 혹은 밝게 빛나는 조명들. 안락한 소파와 눈높이에 맞게 걸려진 텔레비전. 행복해야할 조건은 다 갖추었으나 불완전한 집.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문명이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들만 애타게 채워넣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건을 위한 조건, 그 조건을 위한 조건들을 모으고 구성하느라 지쳐가는 지 모르겠다.


집은 살기 위한 공간이고, 우연과 필연의 틈에 기쁨과 슬픔이 있을텐데, 우연을 용납하지 않는 집에서 우리는 어떤 필연들만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까. 집을 지으면서도, 과연 이 집이 이들에게 행복을 줄지 고민한다. 내 고민의 수준이 건축가의 경험과 지식, 공감능력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함에 스스로 안타까웠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아파트가 아닌 집을 원했던 분께 결국 아파트의 장점으로 땅-집의 이로움을 설명해야했던 게으름을 돌이켜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파트 한국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