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고등학교 친구에게 청첩장을 카톡으로 받았다. 신부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다른 나라 사람하고 결혼하네'라고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봐도 '아 결혼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한다. 이처럼 이제는 국제결혼이 흔한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예전에 한국 사회에서 국제결혼은 조금 특별한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농촌 총각이나 일부 특수한 경우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해외 유학, 해외 근무, 장기 여행, 글로벌 기업 취업이 흔해지면서 국적이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은 너무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 되었다.
내가 동남아에서 지내며 가장 자주 본 변화도 바로 이것이었다. 한국 남성과 현지 여성, 혹은 한국 여성과 현지 남성이 평범한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았다. 라오스에서 콘도에 살 때에는 바로 아래층에 한국인 남편과 라오스인 아내가 사는 가족이 있었다. 남편은 현지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고, 아이 둘은 한국어와 현지어를 모두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처음에는 국제결혼이라는 사실보다 그냥 너무 평범하고 안정적인 가족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한국의 한 지인은 튀르키예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놓고 살고 있다. 지금도 1년에 한 두 번씩 온 가족이 튀르키예에 있는 남편 부모님을 뵈로 간다고 한다. 항공비도 많이 들고 힘들지 않나? 물어보니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다고 하였다.
우리가 학창 시절 배운 것 중에는 시간이 지나며 다시 들여다보면 사실과 조금 다른, 혹은 과장된 표현들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다’와 같은 문장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도 석유가 있지만 생산량이 너무 적어서 돈이 안 되고, 단일 민족도 아니며,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중국도 분단국가가 될 수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식에 가깝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그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서로 직접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어, 교육, 미디어 등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로 상상하는 구성된 집단”이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자연적으로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사회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99.9% 유전자를 공유하며 나머지 0.1% 차이가 개인과 민족의 다양성을 결정한다. 현대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 사람들의 유전자에도 다양한 외래적 요소가 섞여 있다고 한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전부터 중국, 일본, 몽골 등 여러 민족들 교류하면서 피가 섞였다.
우리 역사 속에도 이런 ‘섞임’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가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김수로왕과 허황후 이야기는 매우 상징적이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바닷길을 건너온 허황후가 한반도의 왕과 혼인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시작점에도 이미 외부와의 연결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현대사로 와서도 국제결혼은 꾸준히 존재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난 여성들이 있었고, 1990년대에는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이 빠르게 늘었다. 지금은 농촌을 벗어나 도시에서도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있다.
통계는 혼인 시장의 변화를 증명한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혼인 건수 중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10%를 넘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열 커플 중 한 커플은 국적이 다른 배우자와 손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를 좀 더 자세히 보면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아내의 국적은 베트남(33.5%), 중국(18.1%), 태국(13.7%) 순이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 남편의 국적은 미국(27.7%), 중국(18.4%), 베트남(15.8%)이다. (베트남이 많은 이유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여성이, 다시 베트남 현지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신부들의 경우 최근에는 국적이 라오스, 캄보디아, 러시아, 동유럽 등 여러 나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소득, 전문직들과 서울과 경기도 등 대도시 거주자의 국제결혼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최근 한국 남자- 일본 여자의 결혼 비중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한국 남성들에게 일본 여성은 남자의 말을 잘 따르고, 원룸에서 신혼집을 시작해도 괜찮고, 헌신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일본 여성들에게 한국 남성은 무똑똑한 일본 남자들하고 달리 감정 표현도 잘하고, 무거운 것 있으면 들어주고 밥 먹을 때 의자도 빼주고 (일본 남자들은 그런 게 없다고 한다) 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이제 일본과 거의 비슷해진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남자-일본여자는 비교적 잘 사는데 반대인 일본남자-한국여자는 이혼율이 아주 높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남성들이 동남아에서 국제결혼을 하는 것을 '매매혼'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원래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결혼은 본질적으로 두 사람과 그 가족 사이의 일종의 계약적 성격을 지닌다. 서로의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고려하고, 함께 살아갈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합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서로 얼굴도 잘 모른 채, 심지어 결혼식 당일에 처음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매매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당시에도 결혼은 가문, 생계, 노동력, 재산, 지역 공동체의 안정 등 현실적 요소를 함께 고려한 사회적 제도였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연애 감정, 질투, 애착, 헌신 같은 감정은 선사시대부터 있었다. 고대 수메르나 그리스에서도 연애 시와 사랑 이야기가 많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의 이몽룡과 춘향이의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즉 사랑 자체는 오래된 인간 본능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혼 상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은 훨씬 최근의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류 1만 년 역사를 돌아보면, 혼인 제도에서 '사랑'이 개입된 것은 불과 200~3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18세기 계몽주의·낭만주의 이후, 개인의 선택과 감정이 중요해지면서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관념이 전세계로 확산된다. 즉 “결혼은 원래 사랑만으로 이루어진다”는 현대인의 인식은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예외적으로 최근의 가치관에 가깝다.
오늘날 한국의 결혼정보회사 역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200만 원 남짓 가입비를 내고 5회 정도의 만남 기회를 제공받는다. 커플매니저는 회원의 프로필(외모, 직업, 가정환경, 나이, 학력, 재산 등)을 바탕으로 조건이 맞는 상대를 연결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감정뿐 아니라, 서로의 조건과 가치관, 생활 수준, 미래 계획의 조화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우리는 교제 기간이 길수록 ‘진정한 사랑’에 기반한 결혼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6개월 이상 교제한 뒤 결혼하면 자연스럽고 충분한 이해를 거친 결합으로 본다. 그렇다면 국제결혼에서 1개월, 3개월 교제 기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일부 국제결혼 사례가 일주일 가량의 짧은 만남 후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지적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매매혼’이라는 본질적 규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기준은 만남의 기간이 아니라, 정보의 투명성과 상호 동의, 그리고 이후 관계의 지속성과 존중 여부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은 국제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이제 국제결혼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따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과거처럼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시대는 점점 지나가고 있다.
이제 결혼은 “같은 나라 사람인가”보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성격이 잘 맞는지, 가족관은 어떤지, 돈과 미래에 대한 생각이 비슷한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나 토마스랑 결혼해’, ‘나 응우엔이랑 결혼해’라는 말도 이제는 특별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름이나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다. 금발 머리의 이웃이 옆집에 살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앞집에 사는 모습도 점점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결국 단일민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국경을 없앤다는 뜻만은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 더 넓어지고, 유연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국제결혼은 이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 한 장면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