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해 전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세상은 온통 '코딩 열풍'이었다. 너도나도 개발자가 되겠다며 학원으로 몰려갔고, IT 기업들은 천정부지로 솟은 몸값을 지불하며 인재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술의 시계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은 어떤가.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자연어를 완벽히 이해하고 단 몇 초 만에 수천 줄의 코드를 짜내는 시대다.
사라지는 직업은 개발자뿐만 아니다. 소위 우리가 전문직이라고 불리던 직업들, 약을 처방해 주는 약사,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회계사, 세금에 대한 것을 다루는 세무사, 법을 검토하고 변호를 하는 변호사 같은 '사'자 직업들도 점차 그 자리를 위혐받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최근 다가올 미래를 두고 이렇게 단언했다. "미래에는 직업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것이며, 노동은 일종의 '취미'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고소득 기본소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 오느냐? 10년 안에 될 것인가? 30년이 걸릴 것인가? 시기의 문제는 있지만 그 시대가 온다는 것은 분명하다.(다만 현실적으로는 고소득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본배급제에 가까울 것이다)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의 라인을 돌리고, 물류를 배송하며, 복잡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노동 없는 사회'는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 속 유토피아가 아니다.
노동이 사라진 시대,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생존을 위한 밥벌이가 AI가 도맡아서 처리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까. 정답은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인간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만든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라는 개념은 다가올 AI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간상이다. 그는 놀이가 단순히 쉬는 행위가 아니라, 문화와 문명을 만드는 핵심 동력이라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노예들이 생산을 담당했고 귀족들은 고상한 철학이나 예술을 즐겼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노예의 역할을 로봇이 대신한다. 현재 각 집에 냉장고, 세탁기가 있듯이 앞으로 빠르면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중산층 이상의 집에서는 모두 로봇이 한대 있을 것이다. 그럼 인간은? 삶의 가치는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노느냐'가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말대로 앞으로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 소득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을 하고 지낼 것인가? 그중에서도 '여행'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행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 '완벽한 가짜'의 등장. 한쪽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VR(가상현실)가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고 예측한다. 영화 '토털리콜'을 보면 화성에 여행 갔다 온 기억을 이식한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위험을 무릅쓰고 화성까지 갈 이유가 없다. 그때가 된다면 굳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시차 적응의 고통을 겪으며 공항 검사대를 통과할 필요가 없다. 거실에 앉아 가벼운 고글 하나만 쓰면, 에베레스트 정상의 희박한 공기와 티베트 고원의 장엄한 일몰을 느낄 수 있다. 접근이 금지된 남극의 빙하나 위험한 오지의 풍경조차 실사보다 더 진짜 같은 AI 그래픽으로 구현된다. 굳이 막대한 비용과 체력을 소모하며 '진짜'를 찾아 떠날 이유가 사라진다. 집에서 편안하게 세계 모든 곳을 탐방할 수 있다.
그리고 유튜브 등 각종 매체의 발달로 사람들로 하여금 여행을 가게 할 동기를 낮춘다는 말도 있다. 나 대신 누군가가 어느 사막 오지에 가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게 내가 위험한 사막에 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여행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 '경험 자본'의 시대 반대편의 주장은 좀 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은 막대한 양의 '여가 시간'이다. 여행은 일반인들에게도 폭넓게 확대된다. 초창기 여행을 생각해 보자. 유럽에서 시작된 '그랜드 투어'는 돈과 시간이 많은 귀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했다. 마차를 타고 하인과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 다녔다.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이 여행은 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점차 중산층까지 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을 갔다 온 것은 일종의 훈장이었다. 여권을 들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분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평범한 직장인도 금요일 반차내서 일본의 선술집에서 저녁을 먹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앞으로 다가올 우주여행의 시대 때도 마찬가지이다. 몸이 아프거나 혹은 비용상의 문제로 일부 사람들은 영화 '토털리콜'처럼 화성에 다녀온 '기억을 이식'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부유층은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진짜 화성에 간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가 완벽한 매트릭스일지라도,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그 인위적인 완벽함에 염증을 느낀다. 픽셀로 이루어진 가짜 바람 대신, 비릿한 바다 내음과 피부를 따갑게 찌르는 진짜 햇살을 원하게 된다. '실제 경험'에 대한 희소가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생각은? 결론적으로는 다가오는 AI 시대에는 여행은 지금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본다. 노동시간의 축소와 여가의 확대가 되면서 누군가는 집에서 편안하게 유튜브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경험'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소비하는 여행의 형태는 과거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관광(觀光)'에 가까웠다. 관광이란 말 그대로 '빛(경치)을 보는 것'이다. 즉, 유명한 유적지나 아름다운 풍경을 한 걸음 떨어진 채 눈으로 감상하고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랜드마크를 돌며 '나 여기 왔다 감' 식의 사진 한 장을 남기는, 다소 수동적인 행위에 가까웠다. 앞으로의 여행은 '체험 중심'으로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5성급 호텔의 정갈한 조식보다, 무더운 베트남 어느 도서의 아침 거리에서 목욕탕용 플라스틱 의자에 쭈그려 앉아 현지인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먹는 단돈 1.5달러짜리 쌀국수가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태국의 4월 물축제인 '송크란'에 가보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물총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들은 단순히 축제를 구경하는 관람객이 아니라, 물에 흠뻑 젖은 채 현지인들과 같이 노는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한국의 '산천어 축제' 같은 겨울 축제도 마찬가지다. 얼음장 같은 물속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아 올릴 때의 그 짜릿한 원초적 쾌감은, 가상현실이 제공하는 정교한 진동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즉 단순히 눈으로 보고 사진만 찍는 여행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미래 여행의 본질이 된다.
낯선 곳에서 주는 '우연성의 발견'도 빠뜨릴 수 없다. 지도를 잘못 봐서 우연히 들어선 낡은 골목집에서 숨은 맛집을 발견하는 것, 갑작스러운 폭우를 피해 들어간 처마 밑에서 만난 현지인과의 교류 등은 정교한 AI알고리즘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항공권을 예약하거나 번역 같은 번거로운 일은 AI가 하고, 우리 인간은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누구와 교감할 것인가'와 같은 것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진짜 바람을 맞고, 흙을 맨발로 밟으며,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것. 기술의 발전이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시킨 그 세계에서, 우리 인간은 잘 노는 호모 루덴스로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여행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