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원의 '글자풍경'을 읽기
우리말에는 말씨, 마음씨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말씨는 말하는 태도, 마음씨는 마음의 씀씀이를 말합니다. 어떤 단어 뒤에 ‘-씨’가 붙으면 어떤 ‘태도’ 또는 ‘모양’의 의미를 더합니다. 그렇다면 글씨는 무엇일까요. 글씨는 글의 모양 혹은 글의 태도를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양과 태도는 형태와 마음자세의 다른 말입니다. 예술은 형태와 마음이 드러난 모양이기 때문에 글씨는 예술과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누군가는 ‘문자예술’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요즘 문자예술이라 말하는 영역은 ‘캘리그래피’ 혹은 ‘타이포그래피’라는 분야를 포함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서예(글씨의 예술)이라는 말도 ‘글씨는 곧 예술이다’라는 말의 축약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 글자라는 나무로 둘러싼 산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읽는 내용은 곧 우리가 서있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은 달라집니다. 문자예술에 대한 많은 글을 찾아 읽는 중에 최근 유지원 교수가 쓴 ‘글자풍경’이라는 책은 그 어떤 ‘문자’에 대한 책 보다 결이 풍부하고 밀도가 높음을 느꼈습니다. 제목부터 ‘글자풍경’입니다. 글자에 풍경이라는 말을 넣는 감성이 이 책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풍경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바람이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풍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시공간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그린 겸재 정선을 조선 최고의 풍경화가라고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자란 생물과 같아서 기술과 문화, 자연환경의 생태 속에서 피어난다.”
“글자와 그 형태는 자연 및 사회의 맥락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유지원, 글자풍경, p.13
글자는 우리 삶의 공간, 환경과 함께 호흡하여 생겨납니다. 그리고 글자가 하나의 풍경을 갖는다면, 글자에 대해 쓰는 일은 풍경화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풍경화도 다른 그림처럼 두고두고 보아야 그림 너머에 있는 정취가 느껴집니다. 풍경화를 보기 위해 전시장에 가듯, 글자풍경을 보기 위해 가까이 있는 책들을 선택해봅니다. 한편으로, 글자는 한 사람의 인격이기도 합니다. 글자를 읽으면서 동시에 ‘본다’는 일은 글자를 통해 드러난 의도와 메시지를 읽는 행위입니다.
“글자들의 숲길을 마음 편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끔은 땀 흘려 걸어야 할 길도 나 있는 이 풍경 속으로 독자들께서 성큼 들어오셨으면 한다.”
-유지원, 글자풍경, p.17
메마른 도시에서 풍경을 보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행복과 여유를 줍니다. 제가 그동안 애독한 글씨에 대한 책은 박원규의 ‘서예를 말하다’였는데, 최근에 읽은 유지원의 ‘글자풍경’도 책상 곁에 자주 두고두고 읽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가 매일 읽는 글자체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글자’ 혹은 ‘글씨’라는 주제로 글을 써 내려갑니다. 당분간은 유지원의 ‘글자풍경’의 서평을 중심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