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는 자, 고통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신의 나라는 저들의 손끝에 있을 것임이요.

by Wooin


한 여자가 군중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서 있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얼굴을 낮추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모른 척하며 지나갔다. 누군가의 팔이, 옷자락이 그의 몸을 스쳤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저 조용히, 군중 속에 희미하게 있었다.


12년.


그 시간 동안, 그의 몸은 안쪽에서부터 조용히 무너졌다. 피는 멈추지 않았고, 그의 존재는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병은 단지 질병이 아니었다. 부정한 것, 저주받은 것, 격리되어야 할 것. 그는 '그것'이 되었다.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진 삶. 침묵 속에서 지워져 간 존재.


당시의 사회는 병을 가진 이들을 불결하고, 신이 벌을 내린 존재로 간주했다. 특히 혈루병은 특히 부정한 상태로 여겨졌기에, 그는 격리되어야 했고, 그의 존재는 눈에 띄지 않도록, 고립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것은 사회의 구조가 만든 고립이었고, 공동체가 선언한 부정이었다. 사람들은 병든 그를 피했고, 그 피함이 그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호명되지 않고, 그 목소리가 지워지는 일은 구조적으로 승인되었다. 병은 육체만이 아니라, 말과 시선, 거리감과 침묵으로 이뤄진 사회적 병리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려온 이야기. 어떤 남자가 병든 사람들을 낫게 했다는 말. 아무리 희박해도, 그 가능성 하나로 그는 걸음을 옮겼다. 그 남자의 옷자락만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그 믿음이, 아니 희망이, 그의 발을 움직였다.


군중은 치유의 능력을 가진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리쳤고, 서로 밀쳤다. 그 사이로 여자는 조심스레 파고들었다. 손끝을 뻗었다. 옷자락을 스친 순간, 자신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조용한 깨짐. 깊은 데서 올라오는 온기. 오랜 절망이 희미하게 풀리는 감각.


그 남자는 멈춰서고, 물었다.

"누가 나를 만졌느냐?"


여자는 떨렸다. 하지만 숨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오래 숨어 있었기에.

“저입니다.”


그 고백 이후, 남자는 말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


여자가 손끝으로 얻은 치유는, 단지 의학적 회복의 선고가 아니었다.

남자는 치료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지만, 남자의 말은 그에게 삶의 존엄을 되찾게 해주었다. 이제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구원의 말은 단지 육체의 치유를 넘어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되돌리고 존엄한 존재로 회복시키는 언어였다. 그것은 오래도록 배제되었던 이가 다시 공동체 안으로 초대받는 언어였다. 호명하는 목소리는 그의 존재를 복원했고, 사회의 시선을 다시 쓰게 했다. 병의 치유가 곧 존재의 회복이었다. 고통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되찾는 순간. 환대의 말과 소리는 그에게 존재를 돌려주었다.


고통은 이제 더 이상 은폐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약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짊어진 구조의 틈이며, 시대의 균열이다. 고통을 본다는 것,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거기서부터 구원은 시작된다.


치유는 단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몸이 다시 짜이는 과정이고, 단절되었던 관계의 회복이며, 곧 사회적 선언이었다 — 우리는 이제, 부정하다고 여겨졌던 존재를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구원이란 무엇인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안는 것이다. 그들을 안는 몸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동정과 연민이 아니라, 함께 울겠다는 약속이며, 부당한 현실에 대한 거절이다. 구속은 삶의 조건 속으로 내려온다. 타자의 고통에 닿는 순간, 신은 존재의 무게를 함께 감당하는 자가 된다. 그 손이 닿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구원은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 타자와,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쓰는 실천이다. 우리는 이제, 구원을 단지 신의 선물로 받지 않는다. 구원은 누군가의 아픔을, 더 이상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손의 윤리이며, 몸의 존재방식이다.


그는 이제, 보인다.

그 여자는 다시 불릴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여자의 손끝에서 시작된 변화는, 단지 한 사람을 위한 치유가 아니고 세상을 향한 고요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누구를 부정하고 있으며, 누구를 지워왔는가.

누가 그 옷자락에 손을 댔는가.

누가, 끝내 존재를 회복해낸 것인가.



*


지금까지의 내용은 고대 유태인들의 전승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갈릴리의 예수라고 불렀다.

어떤 이들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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