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기 불편한 말 중에 하나는 '어쩜, 친정 엄마랑 똑같아~'라는 소리다.
엄마가 창피하고 부끄럽거나 싫어서가 결코 아니다. 흰 모발에 동굴 납작한 얼굴, 선해 보이는 인상까지 우리 모녀는 정말 많이도 닮았다. 마냥 청춘일 줄 알았던 내가 나이 든 엄마의 자리에 서 있음을 느낄 때마다 놀랍고 낯설다. 엄마의 노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과 미안함으로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엄마의 잃어버린 시간이 내게도 올 수 있다는 상상은 나를 한없이 외롭고 두렵게 만든다.
부부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아니었는데도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급격히 힘을 잃으셨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생기면서 갑자기 치매 증세가 나타났다. 혼자 계시도록 할 수가 없어 가장 친했던 내가 엄마를 모시기로 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거쳐를 옮기면서 엄마와 나, 그리고 치매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남들처럼 요양보호사, 동내 요양원, 요양전문병원의 정해진 수순을 밟았다. 결국 죽음의 대합실인 요양전문병원에서 외롭게, 코로나로 인해 더욱 쓸쓸히 생을 마감하셨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로 아무것도 기억 못 했다. 눈앞에 보이는 우리들이 누군지 모르고 바라보던 그 황망한 눈망울! 그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사랑의 00님, 자비로우신 00님! 말짱 헛말이었다. 신은 나빴다. 아니 가혹했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적어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은 알고 가셨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아이들임을 알도록 허락하셔야 하는 것은 아닌가. 어머니는 백지상태로 떠났다. 이러한 일이 과연 우리 가족만의 아픔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9월 21일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치매극복의 날을 지정받았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라는 통계가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치매로부터 고통받고 있다. 치매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치매는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현재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인 만큼 치매란 정확히 어떤 병이고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치매는 뇌기능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신경정신계 질환 중 하나이다. 주로 노년기에 많이 발병하지만 드물게 젊은 나이에도 발병하기도 한다. 초기증상으로는 인지기능 저하(기억력 감퇴), 성격변화 등이 나타나고 점차 진행되면서 일상생활 수행능력 및 판단력 장애등 다양한 문제행동들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증상 악화는 가족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큰 부담감을 안겨주게 되고 결국 삶의 질 하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치매예방수칙 333이란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습관, 절주 그리고 독서나 글쓰기 같은 두뇌활동을 꾸준히 매일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수칙만으로도 치매발병률을 약 40%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치매는 매년 많은 양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치료법은 없다. 하지만 치매의 초기 징후를 발견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치매환자의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일상생활을 돕는 것이다. 함께 산책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의 활동을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기억력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식사나 목욕 등을 도와 일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하여 치매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가족들의 중요한 임무이다.
보호자가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지시하면 안 된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한편 지나치게 간섭해서도 안 된다. 반복 학습을 시킴은 물론 보호자의 일관성 있는 행동이 중요하다. 인내심을 갖고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해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생활과 신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항상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
아쉽고 후회되는 것이 많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했다. 심각한 증세임을 알고 제대로 공부했어야만 했다. 소극적으로 그저 주어진 사회적 기본 틀에 맞춰 엄마를 모셨다. 진정 나는 마음을 담아 모신 건가? 엄마와 마음으로 소통하며 모신 것일까?
정서적인 교감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며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해 준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전화를 거는 것처럼 교감은 소통과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내가 엄마와 제대로 된 교감을 할 수 없었다면 자그마한 반려견이라도 친구로 만들어 주었어야 했다. 반려견이 있었더라면 엄마가 건강한 뇌로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애완견이 있음으로 해서 웃고 기뻐하는 일이 많았을 텐데 말이다.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반려견을 들이지 않은 일이 정말 후회스럽다.
엄마의 마지막 꿈마저 외면한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서늘하다. 엄마의 꿈은 세계문학전집을 완독 하는 것이었다. 치매가 걸리면서 읽기 쉽고 감동적인 에세이 위주로 읽으셨다. 읽으시면서 좋은 문구는 줄을 치셨는데 치매가 진행되자 엉뚱한 곳에 표시를 해서 나를 속상하게 했다. 읽은 곳을 반복해 보고 볼 때마다 새롭게 감동받아 나에게 이야기하곤 하셨다. 잘 받아주다가도 가끔 '그것 저번에 이야기했잖아' 하며 지청구를 주기를 했다. 그때 왜 나는 더 다정하게, 친절하게 하지 못했던가. 그렇게 표독스럽게 굴어야만 했는가. 지금 생각해도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책 읽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지식을 준다. 하지만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는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하는 것이 바로 낭독이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묵독하는 것보다 더욱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낭독은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 윤독은 소통의 방법으로도 최고이다.
치매 걸리고 나서 어머니는 하루 종일 누구와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읽기가 힘들고 지루할 땐 서로 한 문단씩 나누어 교대로 읽었더라면 모녀 사이에 소통이 되고 교감이 되어 얼마나 재미나고 행복해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