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024, 우오토 지음, 하성호 옮김, 문학동네
#호기심
인간은 궁금한 걸 못 참는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왜?"인 것처럼, 주변에 대한 호기심은 인류의 본능에 가깝다. 그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미지의 존재는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니까. 하물며 그것이 가깝고 흔한 것이라면 더욱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의 별만큼 인류에게 오래도록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면서도 아직까지 그 비밀을 다 밝혀내지 못한 존재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현대의 과학지식과 관측기술로도 우주의 전모를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과거의 인류는 저 하늘의 별들을 얼마나 궁금해 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인류가 하늘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립이라는 역사가 있었다. 우오토의 만화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는 그 역사를 매우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재현해낸 작품이다.
#신념
이 만화에는 지동설을 밝혀내거나 전파하기 위해 죽음까지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물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그야말로 목숨을 바친 신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언제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게 될까?
현대의 관점에서 '지동설'은 당연한 상식이지만, 작중 인물들은 지동설을 주장하는 데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들은 오히려 지동설을 몰랐으면 그대로 잘 먹고 잘살았을 사람들이었다. 고통스런 죽음 대신 지동설을 버리고 보다 안락한 삶을 선택할 기회도 분명히 있었다. 그 선택은 신념이라는 말이 아니면 설명되기 힘들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신념인가?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건 신념이 아니라 아집이라 불러야 한다. 이들의 신념은 아집이라기보다는, 세상의 질서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는 지적 욕망에 가까웠다.
#지성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했던 것, 인간의 호기심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진리다.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의 무기는 지성(知性)이다. 작중에서는 "인간이 신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신이 부여해준 능력"으로 표현했다.
이 만화 1부의 주인공 라파우와 이단 심문관 노바크의 옥중 대화는 지성이 가진 힘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노바크는 라파우에게 "고문을 만만하게 보지 마"라고 경고하지만, 라파우는 "적이 만만치 않을걸요. 당신들이 상대하는 건 내가 아닙니다"라고 응수한다. 그럼 무엇을 상대한다는 걸까? 라파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지성입니다"라고.
사람들은 때로 참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질문을 한다. 납득되지 않는 설명에, 우연히 발견한 오류에, 관습적으로 용인되던 모순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자들의 입을 막으면 잘못된 이론이, 명백한 오류가, 존재하는 모순이 사라질까? 해소되지 않은 질문은 언제고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다시 제기될 뿐이다. 이것이 라파우가 말한 만만치 않은 적, 돌림병처럼 증식하며 길들일 수 없는 존재, 일종의 상상력이자 호기심인 지성의 정체다.
#감동
진실을 깨닫는 것과 그것을 전파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이 만화의 주인공들 또한 지동설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2부의 주인공 오크지는 아예 글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 용병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감동을 준 지동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기꺼이 지옥에라도 가겠다"라고 하면서.
오크지에게 지동설이 준 감동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하늘(천계)은 깨끗하고 고귀한 곳이며, 지상은 더럽고 부정한 곳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지상에서의 희망 없는 삶을 되도록 빨리 끝내고 싶어 했고, 천국에 가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지동설을 알게 된 이후, 이 지구 또한 "아름답고 장엄한 천계의 일원"임을 깨닫는다. 기존 교회의 세계관 안에서는 부정당하기만 했던 자신과 이 세상을 처음으로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성은 진리를 밝혀내고, 감동은 그것을 전파한다.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이 만화는 지동설과 천동설의 논쟁 역사를 설명하는 학습만화가 아니다. 실제 역사와도 다른 부분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만화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건 지동설이라는 '지식'이 아니다. 진리를 밝히는 데 자신을 바친 이들의 '뜻',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다.
#인간
지구는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었지만, 인류가 그 사실을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인 건 불과 2백여 년 전이다. 생각해보면 우습다. 우주는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을 뿐인데, 인간들끼리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맞냐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게 맞냐를 가지고 천 년이 넘게 싸워왔다니.
다만 인류에게 그 모든 과정이 무의미했던 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지 않다'일 것이다. 지금의 기준에서는 지동설을 거부해왔던 이들이 인류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천동설을 주장하고 옹호했던 사람들 또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다. 그들도 지성이라는 무기로써 세상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자들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만화처럼 지동설 때문에 고문을 받거나 죽임 당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의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우리 인류는 때로 많은 피를 흘렸고, 지금도 흘리고 있다. 그 모든 행위를 어리석다 폄하하기는 쉽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하여, 혹은 내게 감동을 준 무언가를 위해 내 목숨까지 걸고 뛰어들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상은 행동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의해 움직인다.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는 역사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가는지, 그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든 힘은 무엇인지,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만화다.
#만화 #만화에세이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