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먼저 퇴근하는 동료가 인사를 한다.
“일이 많은데, 정시퇴근해야 할 것 같아 죄송해요”
그리고 덧붙인다.
“앞으로도 정시퇴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듣고 한번 더 반성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정시퇴근에 양해라니요. 앞으로는 야근하는 사람이 양해를 구하기로 하죠. 정시퇴근 못 하는 사람이요.”
“ㅋㅋㅋㅋ 야근에 양해 구하기라. 웃기고 좋은데요?”
그렇게 우리는 정시퇴근 동맹을 맺었다.
1.
그는 내 선임이자 동료이다. 부서를 이동해 온 내가 생전 처음 해보는 업무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가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잘 적응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그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어린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인 그가 제시간에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이 부서로 오기 전, 그는 원래 2명이 하던 업무를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 많은 업무가 밀려 있었고, 새롭게 투입된 인력인 나는 생초짜였다. 나는 어떻게든 팀과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알아주지도 않는 야근 같은 멍청한 짓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잠시 잊기로 했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환대해 준 팀과 동료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씩 업무에 익숙해지고 야근 시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밀려 있던 일들이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이란 게 늘 그렇듯이 없어지면 새로운 일이 생기고, 회사는 직원들이 여유롭게 일하는 꼴을 그냥 두고보지 않는다.
2.
다른 사람의 정시퇴근을 지키기 위해 내가 야근을 한다니, 참 모순적인 말인데 당시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밀려있는 업무를 해결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야근을 담보로 지속되는 업무에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조금 더 힘을 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것은 나를 갉아먹고 동료를 힘들게 한다.
나의 연속 야근은 그에게 최악의 형태로 돌아갔다. "WOO가 매일 야근하면서 잘하고 있으니까, 너는 이제 내려놔도 괜찮을 것 같다."라는, 사실상 너 없어도 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한 행동은 위선이었고, 지금 그가 겪은 일이 내 미래가 될 수 있음을.
3.
정시퇴근을 잘하는 방법은 최대한 근무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 못한 업무는 내일 하면 된다. 미룰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걸 먼저 한다. 그래도 역부족이면 야근을 해야겠지. 그러나 야근을 전제로 업무를 해선 안 된다.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 야근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한다. 때론 자발적으로, 때론 상황과 분위기에 떠밀려서. 당연히 보상은 따른다. 법과 규정에 정해진 보상과, 도의적인 칭찬과 인정이. 하지만 그것이 야근을 미화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개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시작점이 된다. 개인의 삶이 무너지면 사회도 병들어간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 폐해를 경험해 봤고, 지금도 겪고 있지 않은가.
퇴근 후에 가족과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친구와 맛있는 걸 먹으면서 떠들 수 있는 여유, 좋아하는 만화나 드라마, 영화 따위를 보면서 울고 웃을 수 있는 짬. 이런 것들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환경은 사람을 소모시킨다. 소모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나와 내 주변이 나쁜 방향으로 변해가지 않도록 저항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라도.
4.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게 되는 때는 또 찾아온다. 연말이 되면 더 잦아질 거고. 국가와 사회에서 아무리 워라밸을 강조해도 어쩔 수 없다. 한쪽에선 연차휴가 사용 촉진 공문을 보내면서 다른 한쪽에선 실적과 경쟁을 압박하는 게 회사다. 이런 건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정시퇴근에는 양해를 구하지 않기로 한 그 약속을 나부터 잘 지키는 것뿐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