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아이』아카사카 아카 글/요코아리 멩고 그림, 2020~2024
당신에겐 최애가 있나요?
집에 같이 사는 청소년의 방에는 캐릭터 굿즈가 가득하다. 각자 최애들의 굿즈라고 한다. 학생의 책장에 책보다 굿즈가 많다. 부모로서 이걸 두고 보는게 맞는 일인지 잠깐 고민해 보지만, 그 덕질을 가르쳐준 게 나이기 때문에 뭐라 하기도 어렵다. 다만 라떼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덕질하기 좋은 세상이 된 것 같아 살짝 배가 아프기는 하다.
최애 하나쯤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다. SNS나 커뮤니티에서 최애를 향한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최애를 위한 소비나 참여 활동을 자랑한다. 최애가 실존하는 연예인이든 가상의 캐릭터든 상관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존재, 나도 그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지는 그런 대상이 최애다.
나도 덕질로 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내겐 최애가 없다. 나한테는 최애라는 개념이 비교적 최신 개념이기도 하고(이런 데서 어쩔 수 없이 아저씨 티가 난다), 콕 찝어서 최애라고 말할 정도로 특별한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애는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 트렌드에 민감한 10대 청소년에게 물어보았다. 딸은 대답 대신 SNS 게시물 하나를 찾아 읽어 줬다.
"최애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최애가 갑자기 와서 심장을 때리며 "오늘부터 내가 니 최애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납득이 되는 동시에, 최애가 있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부러워졌다. 그런 운명 같은 존재가 나와 같은 세상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세상이 달라 보일 것 같았다. 마침 참여 중인 독서클럽의 8월 읽을 거리로 만화 『최애의 아이』가 선정되었다. 최애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탐구하는 심정으로 읽어 보았다.
최애란 무엇일까?
만화 『최애의 아이』를 본 적은 없어도 이름은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이돌과 연예계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파격적인 스토리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작년 말 총 16권으로 완결되었다. 요아소비(YOASOBI)가 부른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 ‘아이돌’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최애의 아이 챌린지’가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트와이스, NCT 등 실제 아이돌이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야기는 전설적인 아이돌 그룹 'B코마치'의 부동의 센터, '호시노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호시노 아이를 포함해서 누군가의 최애가 되어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 그들이 누군가의 최애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 나의 최애가 되어줄 이를 찾는 자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토킹 살해와 같은 극단적 사례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연예계의 어두운 현실도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최애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기에 좋은 작품이다.
최애란 무엇일까? 『최애의 아이』의 또 다른 주인공 '호시노 루비'는 이렇게 말한다. "최애가 있으면 세상이 빛나! 이 거지 같은 세상을 통째로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최애를 애정하는 동안에는 내 목숨에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최애가 있어서 아침에 일어날 수 있고, 주 5일의 노동을 버틸 수 있으며, 삶의 의미가 생겼다는 사람들이 많다.
"간신히 찾아낸 사랑할 수 있는 대상"
최애를 향한 애정은 종종 극단적 형태로 표출된다. 만화 『최애의 아이』에도 그런 내용이 비중 있게 묘사된다. 최애가 나만 바라봐 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최애가 원한다면 기꺼이 범죄자가 되겠다고도 한다. 물론 그건 만화에서도 잘못된 일이 맞다. 아무리 애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해도 범죄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만화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 범죄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근접한 사례를 포함해서.
어째서 최애에게 집착하게 되는 걸까? 쉽게 답할 수는 없다. 최애를 향하는 마음은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랑, 애착, 존경, 위안, 즐거움, 동일시, 헌신 등 여러 감정이 얽혀 있다. 그 모두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팬들은 최애라는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그런 감정적 보상을 얻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최애와 팬이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라고 하더라도, 최애를 소비하는 활동을 배고픔이라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음식을 사먹는 것과 동일 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그저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최애의 아이』 속 아이돌 그룹 'B코마치'의 멤버 'MEM쵸'는 그 심리를 이렇게 해석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우리 인류는 안타깝게도 그런 성가신 감정을 가진 채 태어나고 말았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시대에 말이지. 그런 시대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최애'라고 부르는 거겠지"
"당신과 당신의 최애에게 행복이 함께하길!"
누군가를 향한 강한 애정은 표현되지 않을 수가 없다. 숨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애정의 투사 방식이 집단적 공통성을 띌 때 그것은 문화가 된다. 지금은 케이팝 또는 아이돌 팬덤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오빠부대로 불렸고,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는 또 다른 형태와 이름으로 존재했을 그런 문화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남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해도 개의치 않는다. 최애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고 한다. 아무리 최애라고 해도 생판 남에게 그렇게까지 빠져드는 이유가 뭘까? AI에게 물어보니 애착과 몰입, 보상욕구, 정서적 안정, 정체성과 소속감 등등 그럴듯한 이유를 그럴듯한 출처와 함께 제시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 굳이 이유를 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애는 내가 고르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최애에는 이유가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최애의 존재가 이유다. 최애의 존재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게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덕질은 최애를 위하는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최애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의 표출이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 나로서는, 그들이 서로 행복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