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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영 Oct 18. 2020

완벽하면 이미 늦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 게 된다.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기준으로 다양한 스펙트 럼이 형성되지만, 일에 대한 완벽주의를 기준으로도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일을 꼼꼼하고 빈틈없이 처리하는 태도 자체는 문제가 없다. 조금 답답할 수는 있지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완벽주의를 지나치게 고수했을 때는 대체로 결과가 좋지 못 한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가 오히려 마찰력으로 작용하여 미 완성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미완성이 용서되는 경 우는 위대한 예술가가 유작을 남길 때 정도일 것이다. 조직 생활이나 비즈니스에서 미완성은 가혹한 대가가 따른다. 납기를 못 맞춘 회사는 지체보상금을 지불해야 하고, 시험이나 입찰에서는 아예 평가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팀원이라면 그나마 다행스러 운 일이다. 팀장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그 직원의 완벽 주의가 빛을 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선순위와 중요도에 따라 일을 나누고 완벽을 기해야 하는 일을 그 직원에게 할당하면 된다. 하지만 마감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 는데 아직도 출발선에서 신발 끈을 묶고 있는 팀원이 있다면 팀장은 어디서 맺고 어디서 끊을 것인지 단호하고 명확하게 짚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팀원이 디테일이라는 악마와 싸우느 라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는다. 


문제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팀장인 경우이다. 내가 맡았던 조직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팀장이 있었다. 그의 팀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 직원들은 숨 막 히는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가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것 을 기대하고 너무 세세한 것까지 통제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 팀은 브레인스토밍 회의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디어 회의에서 팀장의 세세하고 부정적인 피드백 을 받지 않으려고 직원들은 아예 의견 자체를 내지 않았다. 새로운 제안은 늘 팀장 발의와 팀장 연출로 진행되었고, 세밀 한 관리하에 마침내 조촐한 성과로 마감되곤 했다. 그는 성과 를 완벽하게 예측했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정확하게 맞췄 다. 그러나 문제는 팀의 확장성과 창의성, 발전 가능성이 가로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완벽주의로 인해 스스로 고립되었고, 직원들에게 적 절한 동기부여를 하거나 권한 위임을 하지도 못하고 실적에 서도 방어 운전만 하다가 결국 업계를 떠났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완벽주의자들이 살아가기 에 너무도 힘들다. 파악해야 할 내용도 방대하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변화의 속도도 가히 5G급이다.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기보다는 직면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애 자일(agile, 재빠른) 방식이 더 중요한 시대다. 


이처럼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나는 얼마 전 도깨비 같은 일을 하나 저질렀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서 직장 인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것이다. 팀 원들은 SNS로 만났으며, 서로 다른 직장, 배경, 세대의 사람 들로 구성되었다. 나이 차이는 최대 30년 가까이 나고, 취업 준비생부터 직장 초년생, 그리고 전문 코치까지 면면도 다양 하다.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젊은 친구들에 게도 처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간단한 콘셉트 회의 를 하고 나서 바로 촬영, 편집, 유튜브 업로드까지 일사천리 로 완성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일단 저질렀고 첫 영상을 지인 들에게 공개했다. 평소 우리를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준 지인 들이 시청하고 깨알 같은 피드백을 보내주었다. 이후 몇 번의 영상을 만들면서 우리는 처음보다 훨씬 나은 콘텐츠와 영상 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더 나은 영상을 만 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생겼다. 무척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완벽주의와 관 련이 깊다. 완벽주의를 극복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가기 위한 작은 도전인 셈이다.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려 했 다면 아마 반년이 지나도록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사 콘텐츠 에 대한 분석과 타깃 시청자층의 성향 파악, 완벽한 기획안 작성, 촬영을 위한 준비, 최적의 장소 섭외, 영상 편집 능력 확 보 등 준비해야 할 일들이 오죽 많을까? 물론 이러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최 소한의 조사와 분석만 거치고 일단 저지른 것이다. 


이 작은 성공(일단 유튜브에 업로드)을 통해 앞으로 지속적인 성공을 거 둘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시작은 미미하나 끝내 창대하리라.’ 우리의 슬로건이 다. 아니 슬로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달성 가능한 조촐한 목표를 수립했고, 다른 채널들과 비교하거나 완성도에 집착 하지 않고 결과를 도출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는 남들과 비교 하는 대신 첫 영상을 만드는 데 매진했다. 영상이 있어야 다 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 다음에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남부끄럽지 않은 멋 진 영상을 만들고자 했다면 지금까지도 첫 영상을 마무리하 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사이클을 돌고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받고 나니 조금 감 이 생겼다. 우리는 여전히 다음 회차를 준비하면서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남들 앞에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는 않았 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했다. 완벽 주의를 내려놓고 시대의 흐름에 몸을 실으니 급류 타기 같은 스릴과 나름의 성취가 손에 잡혔다. 


이제 더 이상 꼼꼼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철저히 이행하는 선형적 업무 수행 방식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서 업무적인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좀 더 완벽을 기하기보다는 빨리 시도하고 그 과정에 서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의 첫 번째 제품이 부끄럽지 않다면 너무 늦게 출시한 것이다If you aren’t embarrassed by the first version of your product, you shipped too late.”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만의 말이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이 공감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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