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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Oct 31. 2020

아르바이트, 하우스키핑

호주워킹홀리데이 도전기

스물여덟에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했다. 하우스 키핑, 다시 말해 객실 청소. 4년제 대학을 나와서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한다면 학력 낭비일까? 그게 공무원이라면 얘기는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환경미화 공무원 채용에 박사 학위자도 도전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대한민국이 아닌 호주에서 구한 아르바이트다.


스물다섯, 승무원의 꿈을 꿨고 안 되는 영어 공부와 함께 생활비가 필요했던 터라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영악했기에 정규직 전환은 생각도 않았고, 부족했지만 외항사 면접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 2년 안에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늘 계획은 어긋났고, 그 이유가 해외 어학연수와 해외 근무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 나는 스물일곱 끝물에 호주로 떠났다. 아무리 짧게 다녀온다고 해도 한국에 돌아오면 스물여덟 끝물이었고, 이래저래 면접 기회를 다시 잡으려면 스물아홉이 될 거라고 예상되는 시나리오였다. 그래도 떠났다. 그때는 젊다고 믿었으니까.



처음 호주에 도착한 일주일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징징거렸던 것 같다. 집도 구해야 하고 일자리도 구해야 한다. 친구도 새로 사귀어야 하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모든 게 제로에서 시작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뭐, 일주일쯤은 귀엽게 애교로 넘길 수 있는 수준으로 봐주자. 어떤 이는 정말로 일주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호주에 도착해서 당장 머물 숙소, 그리고 일자리와 그 지리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유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2주간의 숙소와, 워킹홀리데이 비자, 현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코드 발급 등을 대행해 주었다. 문제는 숙소가 중심가와 조금 떨어져 있어서 차비가 제법 드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거기서 한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머무는 동안에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내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 구하기였는데, 이건 유학원에서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단지 어디서 일자리를 찾고 어떻게 이력서를 쓰는지 정도를 알려 줄 뿐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호주로 떠난 제일의 목적이 반드시 그곳 호텔에서 일하기였다. 예전에 어떤 외항사 면접에서 호텔 근무 경험을 우대해 준다는 공지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지 호텔의 하우스키핑은 여타 많은 한인 레스토랑 시급보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시급보다도 훨씬 높은 시급을 받으며 낮에 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전한 일자리 중 하나였다. 당연히 워홀러 사이에서는, 특히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일이었다. 농장이나 공장보다는 근무 환경이 좋으면서 시급도 높기 때문이다.



일을 구하는 방법은 이력서를 돌리는 방법, 소개로 들어가는 방법 등이 있다. 주로 한인 레스토랑에서 한인끼리 통하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다면 여기서도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을 경력을 중요하게 본다. 나의 목적은 호텔에서 일하는 것, 하지만 전무후무한 경력. 그래서 처음 한 일은 백피 커스 같은 곳에 청소를 해주고 급여 대신 숙소를 제공받으며 일을 배우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숙소는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오직 경력일 뿐. 솔직히 거짓말로 경력을 속이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또 완전 거짓말은 자신이 없었던 터라 이렇게 단 며칠이라도 일을 했다. 그 후 그 경력을 기재한 이력서를 들고 호텔마다 돌렸다. 예상했듯이 쉽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만 하루에도 레스토랑이며 호텔이며 그들이 받는 이력서는 수북이 쌓일 정도다. 세계 각지에서 온 청년들 덕분이다. 심지어 호텔 일은 단지 면접을 보기 위해서도 몇십, 많게는 백만 원을 들여서 알선받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영어를 못해서 면접을 망치면 그 돈은 날리는 돈이다. 어쨌든 나는 이미 호주였고, 뭔가 다른 전략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창의적이진 못했기에 한국에서 하던 그 짓(?)을 더했다. 바로 이력서 뒤에 지원 동기를 쓰는 일. 물론 영어로 써야 한다. 초등학생 작문 수준일지라도 그건 통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나는 그 말을 호주에서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대충 생각나는 정도를 추려 써 보면 이렇다.



“한국 문화에서 보자면 나는 꽤 나이가 많은 편이라 안정된 직장을 찾지 않고 이렇게 호주로 모험을 온다는 일이 쉽지 않았다. 두려웠지만 나에게는 승무원이 되고 싶은 꿈이 있기에 모든 것을 두려움을 버리고 여기 왔다. 해외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일 한 경험과 서비스직의 경험이 승무원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이 하우스키핑 일을 경력이 있는 어느 누구에게 주더라도 상관없을 줄도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운 시기를 겪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그런 큰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승무원이 되겠다는 그 열정만큼 열심히 일하겠다. 읽어줘서 감사하다.”


음, 상당히 각색이 많이 된 것 같지만 영어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 영어 문장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상당히 저급한 수준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이렇게 이력서를 새로 작성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수요가 있는 곳에 이력서를 내미는 일이다. 다행히 한인 친구에게서 어느 호텔에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적절한 시기에 그 호텔을 찾아갔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었다.


물론 앞에서 진심은 통한다는 표현을 빌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겨우 저 글 때문에 나를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웃기게도 그렇게 나를 뽑았던 레이는 일주일 뒤 정년퇴직을 했다. 입사 후 일주일 동안 선반 유리를 깨 먹는 사고를 치고 업무에 익숙해지느라 바빴던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할 기회를 놓쳤다. 그게 아직까지도 아쉽고 후회가 된다. 그녀가 이런 내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경력이 있고, 너를 잘 표현해서 합격이야.'라고 웃으며 말해줬던 레이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란다.


" 고맙습니다. 레이. 은퇴 전 내게 큰 선물을 줘서."



그리고 이건 그냥 추측일 뿐이지만 왠지 레이의 딸은 승무원이었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호주 사람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호텔에서 일하다 은퇴를 했다고 했고, 그의 여동생은 승무원이라고 했다. 겨우 이것만으로 그의 어머니가 레이이고, 레이의 딸이 승무원이라고 단정 짓는 건 나 역시도 너무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는 걸 알지만 그냥 어쩐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결론은 결코 내 노력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가? 그런데 성공이라는 것이 본디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과, 또 우연이 모두 결합되어 빚어지는 결과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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