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 Nov 21. 2020

인생의 효율을 논하다

나는 고효율의 기계가 아니잖아요.

무슨 일을 하건 어떡하면 효율적으로 단 한 방울의 땀도 낭비 없이 일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하우스키핑 일을 할 때도 가장 짧은 동선을 매 순간 생각해서 움직였고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어떤 시스템으로 반복적인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까 고뇌했다. 효율성을 제고하는 일은  단순히 시간 절약이라는 차원을 넘어 어떤 희열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효율, 효율!'을 열사처럼 외치던 나지만 내 인생은 딱히 효율적이지 않은 정도를 넘어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니, 사실 매우 자주.
이 나이면 결혼하고 애도 낳아서 학부모가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시기다. 물론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비혼 대세의 시대에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직장에서의 위치, 모아둔 돈, 내 집 마련 여부, 노후 준비 등을 따져보아도 아, 정말 효율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구나 여실히 느낀다.

참 우습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도 효율을 따지며 살던 내가 정작 인생이란 중요한 과업을 이토록 비효율적으로 마구 살아댔다니. 적은 노력으로 큰 성취를 이뤄낸 삶이 가장 효율이 높은 삶이라 친다면 나는 큰 노력을 쏟아부어 작고 소중 하다는 월급처럼 소소한 성취를 얻었으니 에너지 소비 효율로 따지면 4등급쯤은 매길 수 있으려나?

사람들이 흔히 나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대기만성,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느니 하는 상투적 위로들. 그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닐지언정 미치도록 효율적이고 싶었던 나에겐 그저 가벼운 농담 같다. 웃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처절하게 슬픈 것도 아닌, 그래서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간지러운 소음 같은 그런 것.

그런데 말이다, 무슨 까닭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에서 효율을 따진다는 게 갑자기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내가 인생을 살아내는 기계도 아니고 왜 거기서 효율성을 따지고 앉았냐며, 효율 좋게 인생을 살아서 내가 얻는 것은 무얼까? 남들보다 빠른 성공? 실패 없이 계속되는 성공? 그런 인생이 애초에 가능하기는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효율성 높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내면 과연 훌륭한 사람인 걸까? 혹 고효율의 훌륭한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가 불철주야 노력해서 한낱 기계가 되어버리면 완전무결한 삶이 되기보다는 무색무취의 완제품 같은 삶이 또 하나 생성될 뿐이다. 나는 그저 엇비슷한 기계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 되고 싶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했던가. 난 다수의 경쟁자와 결승선이 정해진 달리기보단 내 삶을 하나의 걸작으로 남기고 싶다. 굳이 남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품. 그래서 인생의 효율성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패에 무너져 바닥을 기고 지하 벙커에서 은둔 생활을 하더라도 언제고 다시 기어 나와 또 다른 삶을 수놓는 사람이 되련다.


위인전은 위인이 태어났기에 쓰인 것이 아니라, 범인이 인생에 드리운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섰기에 탄생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놀랍도록 비효율적인 이유는 삶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필연적 요소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조금 헤매고 방황하면 어떠랴, 그게 인생인 것을!













작가의 이전글 아르바이트, 하우스키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