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는 끝에서 머문다

회자정리에서 거자필반까지

모든 만남에는 끝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 사람의 모든 이미지가 머문다. 유종의 미. 이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초면에 매우 신사적이다. 그가 원래부터 예의를 갖추어서 일수도, 혹은 다른 이의 환심을 사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린 항상 그 사람의 끝까지 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끝. 내가 이제 너랑은 다시 볼 일이 없다. 그러니 깽판을 쳐볼까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대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최악의 끝을 당한 사람 중에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반성하고 고찰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어쨌든 그에게서 받은 상처는 나쁜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평생. 그 때문에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끝을 선물했던 과거의 연인에게서 현실을 부정하는 몸부림 끝에 뿜은 독설을 뒤집어쓴 일이 있다. 사실 내가 준비한 끝이라지만 끝은 언제나 슬프다. 그 슬픈 와중에 예상치 못한 독설을 들었으니, 한편으로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참을 내가 정말 나쁜 년인 걸까 고민했다. 그래, 인정. 나쁜 년이라도 이별은 해야만 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의 마지막 말이 나의 이별을 정당화했다. 

비단 사랑에만 끝이 중요할까? 세상만사 끝은 끝을 모르게 중요하다. 요즘같이 똥물을 제대로 뒤집어썼던 날이 있었는지, 끝이 아름답지 못한 인간을 증오하는 마음마저 든다. 퇴사하는 날, 제대로 업무 인계도 하지 않고 나 몰라라 하며 떠나는 사람 때문이다. 사실 철없던 젊은 날, 나 역시도 회사에 하루 출근하고 다음날 말없이 빤스 런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던 탓에  지금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게 살짝 부끄럽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맡았던 일이 있던 회사를 나오면서 숨바꼭질하듯 업무를 숨겨 놓진 않았다. 

특히 계약직은 계약 만료 전에 갑작스레 퇴사하는 일이 종종 있다. 회사를 떠나는 마음을 모르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하던 업무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책임감 없게 떠나는 사람들의 뒤는 구리다. 끝을 아름답게 맺지 못한 것이다. 혹자 중에는 일부러 그러는 사람도 더러 있다. 회사를 향한 소심한 복수가 하고팠는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깽값은 내가 고스란히 물게 되어있다. 내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이다. 이제 끝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회자정리 후에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그들이 내게 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세상사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마주칠지 모르니 부디 오늘의 끝은 다시 마주쳐도 민망하지 않도록 아름답게 맺길. 내가 생각한 영원한 끝이 사실은 그저 오늘의 끝일뿐이다.

아... 빤스 런 한 회사 사장님께 사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