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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민 Oct 10. 2021

기울이는 것쯤 아무렴 어떨까

[에세이] 고유한순간들

photo by. @b.guurm


단어를 수집한다. 문장만큼이나 단어와도 자주 사랑에 빠진다. 일기장과 사전 어플에 도토리처럼 모아둔다. 언제든지 꺼내 사고의 가난함을 볼록 부풀리게.

개중 ‘기울이다’란 단어는 손에 꼽게 좋아한다. 기울이다는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다」, 「물병을 컵으로 기울이다」 처럼 비스듬하게 한쪽을 낮추거나 삐뚤게 한다는 뜻과 「심혈을 기울이다」, 「주의를 기울이다」와 같이 정성이나 노력 따위를 한곳으로 모은다는 의미가 있다. 두가지 모두 그것이 사물의 모양이든 사람의 정신이든 한군데 모인다는 점이 좋다. 소리 내 발음할 때 ‘울’에서 목구멍이 울리는 어감이 퍽 다정하고 입술의 모양도 귀엽다. 모름지기 다정하고 귀여운 게 전부다.

단어를 모으는 일만큼이나 사랑에 빠진 건 차(茶). 섬의 시골 마을에 풀벌레만 기도하는 까만 밤이 오면, 성수(聖水)처럼 거른 물을 끓인다. 편애하는 향내음이 방안에 퍼지면,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피아노 연주에 찻잎을 우린다. 차를 마시며 얀 티에르상(Yann Tiersen)에서 이루마의 선율까지 시집 조금. 챗 베이커(Chet Baker)로 넘겨 김오키가 흐를 때까지 그림책 조금.

책장을 덮으면 나를 둘러싼 문장들로 글과 시를 쓴다.



photo by. @b.guurm


달이 뜬 밤엔 숙차를 마시고, 수국 핀 창가에선 생차를 마시고, 무밭 옆 산책길엔 꽃잎과 허브를 말린 차를 마신다. 차가 좋은 이유를 말하라면 종일도 재잘대겠지만,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을 거르고, 적당한 온도로 끓이고, 찻잎을 세차(洗茶)하고, 다기를 차례로 데우고, 적당히 우러나는 때를 기다리고, 마시기 좋게 거르고 따르고. 점점 연해져 제 몫을 다할 때까지.. 다시, 또다시. 기울이지 않은 차는, 금세 떫거나 묽거나 식어버린다. 그 수고롭고도 성심스럽고 겸허한 착실함.

고유한 순간들을 쓴 김인 작가는 그것이 일과 기도가 다르지 않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중세 장인의 일처럼 여겨진다 했다. 장인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말뜻을 가지고 있다. 장인의 영혼에는 기울임이란 단어가 운명처럼 새겨져 있다. 플라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장인들은 모두 시인이건만, 이제는 시인으로 불리지 않으며, 다른 이름들이 생겼다’라고.


차를 내리는 일은 시를 쓰는 결과 닮아있다. ‘향미는 이미지들의 결합이고 기억과 시간들의 콜라주였다. 쓰지만 달콤했고 쓸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눈부시게 중첩됐다.’라는 문장처럼 차의 향미는 시의 시어와 같다. 시를 이루는 것들도 그렇다. 장면들, 기억들, 아름답고 쓸모없고 쓸쓸한 것들.

매일 밤 무엇에 씐 사람처럼 차를 내리고 시를 쓰는 이유도 알아냈다. ‘고대 주술사들은 차를 이용해 병을 고치고 신을 만났다. 뮤즈라 불리는 신. 시인은 차를 마시고 시를 썼다. 도공은 찻잔을 빚었다.’는 문장. 나는 서사시의 뮤즈인 칼리오페를 부르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덕분에 「그가 나의 뮤즈」라는 시도 썼으니 이쯤 되면 신의 계시를 받은 건가.



‘매일 밤 차를 마시며 뮤즈라 부르는 신을 만난다.’


보이차의 세계를 열어준 숲속 차실 선생님은, 제일 좋은 차는 삼성가와 스님들이 가지고 있을 거라 했다. 삼성가에 들어가긴 글렀고, 큰 절에는 들어가기 수월했다. 내 이름은 불교계 큰스님이 지어주셨고 부모님은 조계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한 분들이니, 본투비(Born to be) 다인(茶人)일 수 밖에. 별수 없이 산을 올라야겠다.

집을 떠올리면 늘 네 가지 냄새가 난다. 아빠의 나무 냄새, 엄마가 내리는 차 냄새, 방마다 켜 놓은 향냄새. 학창시절 석식을 먹고 친구들이 콜라와 아이스크림을 찾을 때, 나는 사물함에서 그날의 입맛에 맞는 삼각 티백을 꺼내 우렸다. 직장인의 생존 식품인 당과 카페인을 블렌딩한 카라멜 라떼, 흑당 밀크티, 시그니처 핫초코도 금세 싫증이 났다. 차는 화려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게 오래 곁에 머물러준 연인 같다. 차는 담백한 수선 같다. 수수한 찻그릇은 그늘 같다.


김인 작가는 어떤 여자에게 “너는 여기에 살기엔 너무 프랑스적이야”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했다. 나는 어떤 남자에게 “섬에서 하는 사랑은 지나가는 바람이지 않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가 들은 프랑스적이라는 말이 이상하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었던 셈이라면, 그에게 들은 바람이라는 말은 이상적이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인 셈이다.

그녀와 그가 모르고 있는 비밀을 답해주겠다. 프랑스도 누군가 딛고 있는 땅이고, 바람도 어디서나 불어온다고. 그러니 함께 차를 마시자 하겠다. 차를 내리는 일은 장인과 같고, 장인들은 모두 시인이며, 아이들은 시인으로 태어나니까. 너나 나나 식물과 바람의 아이였다고. 허락 없이 나무를 탔고, 그것의 과실을 마음껏 따먹었으며, 땡볕 같던 사랑의 열기를 식혔고, 억새의 물결에 외로움을 누이며 이만큼 성장했다고. 다만 자신이 시인이었다는 기억을 잊은 사람과 잊지 않은 채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박연준 시인의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우리 조금 기울이며 사는 것쯤
아무렴 어떨까.




photo by. @b.guu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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