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옹즈 Mar 08. 2023

7살, 엄마는 내가 죽으면 슬퍼할까?

학원 다니기 싫어요!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매우 강압적이고 강박적이며 완벽주의자였고 강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성격이 변하시진 않았다. 7살의 나는 6시부터 TV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가 그렇게 보고 싶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IPTV,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것이 없었다. 신문에서 편성표를 확인해서 오늘 몇 시부터 어느 채널에서 만화영화를 하는지 찾아봐야 했다. 이후,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비디오테이프로 예약녹화를 할 수 있는 기능도 생겼지만, 8살 어린 내 동생은 번번이 비디오를 켜놓는 사고를 쳐, 내가 보고 싶었던 만화영화는 녹화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날도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하이라이트 장면이 방영되는 날이었다. 어머니에게 학원에 가기 싫다고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성을 내시면서 "한 달에 너한테 투자하는 학원비가 얼마인 줄 아냐'하고 소리치셨다. 성격이 여리고 소심한 면이 있었던 나는 크게 반항 한 번 못해보고 그저 하라는 대로 학원에 다녔다. 속에는 억울함만 쌓여갔다.


7살의 어느 날 속셈학원에서 학원교재를 푸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는 내가 죽으면 과연 슬퍼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죽음으로써 엄마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우울증의 시작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전부 자기 기준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산다. 그렇기에 나도, 다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줄 알았다. 중고등학생이 되고 심리학 서적을 읽고, 성인이 되어 결국 불면증으로 정신과에 다니면서 상담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나 답답한 느낌이 들었고, 모든 풍경들이 회색으로 보였던 것이 우울증 때문이었던 것이다.


한 때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알기 위해,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고 공감이 가서 눈물도 흘렸지만, 이제는 안다. 책이 날 고쳐줄 수 없다는 것을! 책을 읽어도 그 순간뿐이었고 자기 연민에 빠질 뿐이었다. 가장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약물치료였고 인지치료와 병행되었다. 약물치료를 받고 약에 적응하는 순간부터, 왠지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도 감정의 동요가 줄어들었다.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고 신이 났다. 예전부터 내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21살에 처음으로 용기 내어 찾아간 정신과에서 나의 우울감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해주었더라면, '4년간의 대학생활이 그렇게 우중충하지 않았을 텐데....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좀 더 용기를 내어 공무원 공부보단,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무역학과였기에 어학연수가 필요했다. 토익은 문제집으로 고득점을 맞을 자신이 있었지만, 회화는 다른 문제였다. 운이 좋게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한 달짜리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필리핀을 다녀왔을 때, 1:1로 회화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성향자체가 내성적이었고, 혼자 참여했으며 가서 친한 사람도 만들지 못했다. 토익에 대한 생각으로 항상 마음 한편이 무거웠기에, 처음 나가 본 외국이었지만 신나게 놀기는 힘들어다.


20대는 가진 것이 없어도 젊음만으로 빛나는 시기이다. 그런 20대를 우울증 때문에 언제나 근심걱정에 가득 찬 채, 통으로 날리다시피 했으니 억울했다. 조금만 일찍 치료받았더라면, 내게도 일찍 봄날이 찾아왔을 텐데...라는 아쉬움만 늘어갔다.







  

작가의 이전글 36살, 폐점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