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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Feb 27. 2023

설악산 오겡끼데스까...

캐나다에 들려온 설악산 케이블카 소식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녀 본 나라중에

가장 오래동안 느낌이 남는 두 나라는

이탈리아와 아이슬란드인 것 같다.


상당히 다른 느낌의 나라이지만,

한해 한해 시간이 켜켜이 쌓이다보니,

 그 느낌을 하나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두 나라의 공통점은

찰라와 같은 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공간으로 잡아 두었다는데 있다.


대학생 때 이탈리아에서 운좋게 연수를 6개월 정도 했었는데, 내가 살던 집은 수백년도 더 된 집이었다.


밤에 그런 집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 보면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중세의 끝에서 같은 천장을 바라보던 누군가에게

이 공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공간을 통해 시간을 공유하는 나라, 이탈리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탈리아에 다시 갈 기회가 있었던 10여년전 내가 살던 동네를 찾았다.


너무 신기하게도

그 집의 낡고 작은문의 손잡이마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문에 다시 손을 대보던 그 순간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나에게 그 문은 <시네마천국>의 한 장면 같이,

어릴 적 나의 어설품과 늘 마주하고 대화하던 친구와도 같고, 고향이 주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아이슬란드는 자연을 통해 같은 느낌을 전달해 주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정말 자연에 거의 손을 대어 놓은 것이 없다.

유럽 최대의 폭포라는 데디포스를 들어가는 길은 불편하기 그지 없다.


                            아이슬란드 데티포스



비포장을 한 시간 넘게 달려가면서 그 불편함에 중간에 돌아나갈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도착하니, 그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이곳은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오프닝 씬의 장소이기도 하다.


캐나다에 살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여러 번 다녀와 봤지만, 데티포스의 원시성에 비하면

나이아가라는 그 거대함을 포획당해 자본으로 전시한 '시설'에 가깝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유럽 최대의 폭포에 펜스 하나 만들어 놓지 않은 데티포스가 가진 공간의 결이 와닿는 이유는,

최초 인류가 봤던 광경이 나의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기 캐나다에도 그런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런 곳을 향유하는 것은  자본으로 재단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무료이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개발방식은 재개발을 통해 새로운 아파트와 상가를 계속 올리는 형태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고향과 내가 자라던 공간을 잃었다.

내가 뛰놀던 어린 시절의 동네는 행정지번으로만 존재하고


또 응팔 같은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고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 (TVN)

그래서 이번에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계획은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크다.


우리나라에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공간은  자연 밖에는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이야기하던 설악산과, 부모님이 이야기하던 설악산, 그리고 내가 친구들과 추억을 담았던 설악산은 크게 다르지 않다. 광속도의 개발과 수익을 추구하며 살던 사회관성 속에서 남겨두고 싶은 마지막 공간은 그래서 무엇보다 자연이다.


케이블카는 항상 논란이 많은 안건이다. 그랜드캐년에서도 케이블카 사업으로 격렬한 찬반 논란이 있었고, 킬리만자로 케이블카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그랜드캐년 케이블 카 사업의 경우에는 자연훼손 뿐만 아니라 신성한 땅이라고 주장하는 원주민의 반발도 거샜는데, 차가운 개발자의 논리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겠지만, 내가 경험한 감성적 차원에서는 눈물이 날만큼 설득이 되는 이야기이다.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기억이 남아 있는  

모자르트가 커피를 마시던 카페가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고호가 드나들었다는

프랑스 아를의 카페.


그런 곳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호사를 누리고 싶은 것은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시간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아를(Arles) 고흐의 카페.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 외치는 '오갱끼데스까'가 와 닿는 이유도,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우리의 기적은 단지 너의 기다림이었어"라는 대사 속에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고풍스러운 피렌체의 거리가 기억에 남는 이유도,


시간에도 불변하는 공간의 영원성에 대한 동경과 촉각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가 들다보니 그 결을 읽을 수 있게되었고, 그 느낌의 소중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케이블카 사업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찬반이 극명하게 나뉘는 안건이지만,

좋아할 사람도, 싫어할 사람도 모두 있을 것이고,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만,


모두 다 떠나서

나는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어릴적부터 최근까지

추억이 농축된 변하지 않을 공간 하나 정도는

남아 있었으면 한다.



 

"설악산,


잘 계시나요?"


                  Once upon a time In 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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