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간은 지나 아들이 군대에 입영하게 되었다.
PC방에 다녀온다며 초를 다투는 클릭 신공을 발휘해 단 몇 명만 뽑는 일반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앞으로 2주 후면 군대에 입영할 거라며 식구들을 놀라게 했다.
굼뜨고 행동이 느리고, 최대한 일을 미루며 '내일은 또 내일이 온다'는 신조로 하루하루를 게으르게 보내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당장 2주 후에 입영한다는 사실에도 아들은 더욱 진심으로 아무렇게나 시간을 보냈다.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갈수록 실감이 와야 할 텐데, 늘 배달음식을 시키고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과 씨름하며 주야장천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저렇게 아무렇게나 살 수가 있지?
어진 부모 밑에 어진 자녀가 자라나고, 모자란 부모 밑에는 한없이 모자란 자녀가 있나 보다. 우리는 그릇이 작고 부족함이 넘치는 부모임이 틀림없다. 부인하지 않는다.
아들은 마지막까지 실컷 놀겠노라며 건드리지 말라고 선포를 했다. 사실은 입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되고 떨릴 것이다.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꿈쩍도 않고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한심스럽게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들은 덩치도 크고, 배달음식으로 나날이 살이 쪄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100킬로가 넘겠는데.
입영일이 다가오자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여 아들의 입대를 배웅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골방에서 게임을 하던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나와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예약한 식당에 모두들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구들은 아쉬워하며 군대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오라고 덕담을 나눠주었다. 아들은 힘을 냈고, 식구들이 용돈을 쥐어주며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의미로 지지해 주었다.
그렇게 친정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다음, 남편은 시어머니께도 인사를 드리자고 했다. 사실 시어머니는 손주들에게 관심이 크게 없어서 나중에 말씀드리려던 참이었다. 애초에 나는 어머님이 아들에게 관심을 주신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다. 과거의 경험들이 누적되었기 때문이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은 할머니일 수도 있으니 흔쾌히 방문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보면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기 어렵겠다고 수년째 말씀하셨고, 역시나 서먹한 기류가 있었다. 그래도 잘 다녀오라며 봉투를 건네주셨고, 잠깐 테이블에 앉아 다과 시간이 마련되었다.
어머니는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셨는데, 당시에 아들들 앞날이 걱정되어 입영 날에도 집 앞까지만 배웅하고 따라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지인들은 어머니를 보고 독한 사람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아들들이 스스로 잘 장성하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어떤 지인이 몸은 고장나서 @@같이 되었는데 손주 군대 간다고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주는 것을 보며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솔직히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그 지인이 어머니를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 입대를 앞둔 아들 앞에서 그런 저급한 어휘와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우리 엄마는 팔순에 요양보호사이신데, 관절이 다 닳아져 절뚝거리시면서도 조금씩 일을 하며 즐거운 생활을 하신다. 그런 엄마가 아들이 군대 간다고 하니 갈비, 김치, 갖은 음식들을 싸주셨고, 집에서 마지막으로 아들 잘 챙겨 먹이라고 당부하셨다.
결국 어머니 말씀 속 그분,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인 셈이 되었다.
말은 참으로 쉽게 사람을 상처 입힌다. 부모인 우리조차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고, 군대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에 부담을 덜어주고자 찾아간 자리였는데, 친정 식구들의 응원과 격려와는 다르게, 시댁에서 손주란 이웃보다 조금 더 가까운 정도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잊자. 크게 보면 좋은 의도로 말씀하셨겠지.
아들은 친지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 마지막 저녁을 오붓하게 우리 식구끼리 즐겼다. 용돈을 받은 김에 아들은 마지막으로 치킨을 쏜다며 화려한 야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빠는 회사에 출근해야 했고 보호자로 함께 들어가는 사람은 엄마인 나와 아들, 이렇게 둘 뿐이었다.
소규모 강당에 훈련병과 부모들이 모이자, 훈련 대표가 나와 각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했다. 요즘은 젠지세대라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문제인데, 그런 면을 고려하여 부모들에게 강조한 것은 아들들이 체력이 엄청나게 발달할 것이며 훌륭한 전사로 거듭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부모와 훈련병은 헤어지고, 대운동장으로 다시 집합했다. 부모들은 스탠드에 자리를 잡았고, 운동장에서는 방금 기합을 받고 온 듯 일렬로 씩씩하게 걸어오는 아들들이 사열 종대를 이루며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행사는 순서대로 진행되었고, 주변에서 훌쩍이는 부모들의 콧물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고, 수많은 빡빡이들 사이에서 아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아들의 의상을 떠올리며 기어코 한참 만에 먼 거리의 아들을 찾았다.
집에서는 한심스러운 아들이었지만, 밖에서 보니 흔들림 없이 자세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심이 되었다. 어디서든 잘 생활하리라는 믿음이 점차 차오르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라도 엄마는 온 세포로 그 느낌을 안다. 아들이 든든하게 잘 있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내 아들이니까, 하려면 제대로 하겠다는 신뢰가 내 안에 머물렀다.
"충성."
3분의 시간 동안 부모와 아들의 작별이 주어졌다.
나는 아들을 향해 다가갔고, 멀리서 아들의 눈빛이 나를 좇아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들은 갑자기 나를 꽉 껴안았다.
"잘 다녀올게."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엄마가 보고 싶은데 참아야 한다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엄마를 멀리서 찾아봤어?"
내 물음에 아들은 엄마를 한눈에 알아봤다고 했다.
빡빡이들 사이에서 아들을 못 찾은 나에 비하면, 아들이 엄마를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괜스레 미안해져서 나는 아들을 한 번 더 안았다.
"잘 다녀와. 건강하게 지내고, 이제 게임과 핸드폰 중독에서도 좀 벗어나자.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너라."
아들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왔다. 연차를 썼기에 곧장 올 수 있었다. 아들 방을 열어보고, 나는 안방 침대에 벌러덩 누워 그대로 잠들었다. 일어나니 초저녁 6시가 되어 있었다.
그때 밀려오는 묵직함이 무섭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다. 이 기분이 말도 안 되게 거북하고 눈물이 나지 않지만, 앞으로 아들이 제대할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남편이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나는 말했다. 아들이 떠난 자리가 실감이 나서 안 되겠다고, 밖에 나가 뛰고 오자고.
평소 운동을 안 하던 남편이 말했다.
"그래, 우리도 아들 군대 갔으니까 뭐라도 하면서 잊어보자."
그렇게 운동화를 신고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땀을 흘리고 바람을 맞으며, 이 좋은 계절의 저녁이 시원하게 내 마음을 날려주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아들 때문인지, 운동 탓인지 구별할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