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당신은 유죄입니다.

베르베르 심판 책을 읽고

by 바크


심판에서 피고인은 재판장에 선다. 검사와 변호인이 변론을 펼치고,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재판을 연다.


천국에서는 유죄는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다는 이유로, 실패를 두려워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립된다. 그리고 다시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을 법정에 세워두고 유무죄를 가리며 당시 프랑스 사회의 만연한 문제들, 의료인 수 부족, 교육 문제, 사회문제등을 위트있게 서술한다. 각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인간의 삶과 복잡성을 다룬다. 그리고 자유의지가 주어지는 반전미가 있다.)



책에 따르면 우리 운명은 유전 25%, 전생의 카르마 25%, 자유의지 50%로 구성된다. 여기서 ‘선택된 운명’이라는 표현이 묘하다. 이미 운명이 선택되었다면, 그것은 운명 결정론에 가깝지 않은가.



태어난 순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으로 수명이 정해지고, 무의식적인 선택마저 전생의 카르마로 결정된 것이라면, 삶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이 소설은 그렇게 주어진 대로 산 삶에 유죄를 선고한다. 반대로 자유의지로 조금이라도 방향을 벗어나려 했던 사람, 실패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간 사람, 주어진 숙명을 거스르려 노력한 사람에게는 천국에 영원히 머무를 특권이 주어진다.



나는 가끔 유전 결정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해진다. 모든 것이 유전으로 귀결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비만도 유전, 당뇨도 유전, 암도 유전, 허리 디스크도 유전, 대머리도 유전, 성질머리도 유전. 그렇게 말해버리면 우리는 모든 것을 유전 탓으로 돌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와 함께 자란 환경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쳐 유전과 근접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먹는 습관과 생활 습관 역시 주어진 조건 안에서 반복되니, 질병이 더 빨리 따라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유전을 벗어나려 해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벗어나려는 사람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내 과거를 돌아보면 더 나아갈 수 있었던 순간들을 번번이 놓쳤다. 결단하지 못한 채 우유부단했고, 그 죄로 남편을 설득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를 방임하며 회피했고, 자유를 책임 없이 흘려보내는 선택들 속에 머물렀다.


그 결과 아이들은 특별히 잘난 구석 없이 자랐다. 한 아이는 은둔형에 가깝고, 다른 한 아이는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나를 향한 손가락질도 있었다. 무식한 죄, 가난한 집안의 죄, 똑똑하지 못한 죄, 어떤 결정을 내려도 어리석다는 죄. 그 손가락들이 결국 나를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완전히 순응하며 살았다. 어르신들의 말처럼 사주팔자대로 운명은 정해져 있다며, 그 운명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나는 운명 결정론적 발언을 싫어한다. 유전이니까, 카르마니까 하는 말들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기회가 없을수록 자유의지를 더 믿어야 한다. 어설픈 연륜과 경험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 순응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세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심판을 읽으며 생각했다. 남은 생을 운명대로 살아갈지언정, 내 자유의지 50%만큼은 더 믿어보고 싶다. 내가 나를 단정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


내가 아닌 나를, 끝내 마주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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