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편견에 대해
내가 일하는 공장의 근로자들은 모두 나 같은 이민자들이다. 특히, 중국인, 베트남인, 필리핀인이 많고, 그 외 각 나라마다 한두 명씩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서로 어울려 일한다. 한국사람은 나 혼자다. 내가 Korea 사람이란 사실이 알려진 후, 나를 보면 North? South?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South라고 말하면, 자신이 아는 South Korea에 대한 지식이나 알고 있는 한국말을 외치며 한바탕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나를 보고 '오빠'라고 부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씩 웃고 만다.
이 공장에서 처음 함께 일한 사람은 베트남인이다. 외모가 키가 작고 배가 나와 중국인인 줄 알았는데 이름을 보니 베트남인이었다. 나는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하려 그의 지시를 잘 따르고, 어떤 질문에도 항상 웃으며 성실히 대답했다. 그에게 겸손하게 대하면 내게 호감을 갖고, 내가 공장에 잘 적응하도록 그가 도와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며칠을 함께 일하고 난 후, 나를 쳐다보는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나를 볼 때마다 눈을 약간 내리깔고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처음엔 원래 그의 표정이 그려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경멸의 눈초리가 무시의 태도로 바뀌었다.
한 달 정도 함께 일했을 때, 그가 자신이 가지고 온 물병에 티백을 넣고, 공장 어딘가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차로 만들어 먹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에게 어디서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냐고 묻자, 그가 직접 나를 안내해 주었다. 공장 한구석에 세면대 같은 곳이 있고, 그 위에 있는 수도꼭지를 가리키며 이곳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수도꼭지 밑에 손을 대고 수도꼭지를 틀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대로 했고, 뜨거운 물에 손을 데었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자, 그가 그런 나를 보고 비웃었다. 그때 난 알았다, 이 놈이 그동안 나를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난 더 이상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어떤 질문에도 예, 아니오 외에 더 이상 길게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더 이상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일한 지 네 달 정도 되었을 때, 공장 밖에서 다른 베트남인과 둘이서 청소를 함께 했다. 키가 작고 깡마른 체구의 그는, 자신이 캐나다 오기 전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며 한국 자랑을 한참 내게 하더니,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기에게 말하라고 했다. 내가 몇 가지 궁금한 것과 필요한 것을 말하자, 자신이 다 해결해 주겠다며, 등을 툭툭 치며 힘내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심지어, 초창기에 나를 괴롭혔던 그 베트남인에 대해 말했더니, 자기도 그놈을 몹시 싫어한다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친해지고, 그날 이후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나를 쳐다보며 힘내라는 표시로 엄지 척하고 씩 웃는다.
다인종국가인 캐나다에 살며 수많은 인종을 만난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사실은,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개인이 좋고 나쁘다는 사실이다. 중국인은 어떻고, 흑인은 어떻고, 인도인은 어떻고 하는 말을 이민 초기에 나도 믿었지만, 어떤 민족이나 인종할 것 없이, 좋은 사람과 나쁜 놈은 늘 일정비율 섞여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한국인을 등쳐먹고 착취하는 한국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손해를 봐도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는 한국사람들도 있다. 성격이 거칠고 사나운 사람이 있고, 온순하고 착한 사람이 있다.
편견이란 그런 것이다.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에 맞는 사실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실은 예외이거나 오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버리고 보면 나와 너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너도 싫어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너도 좋아한다. 간혹, 나의 호의를 약함으로
착각하고 이용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즉시 알아채고 피하거나 때로 적절한 응징을 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