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수경, 『박하』를 읽고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한 날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은 이연과 하남을 잃은 칸. 혹은 이무.
이연은 (몸은) 멀고도 (마음만은) 가까운 친구 마준으로부터 노트 하나를 건네받는다. 20세기 초, 한 남성에 의해 작성된 일기로 보이는 낡은 노트. 독일어로 작성된 그것을 마준이 번역해 본디 편집자였던 이연에게 책으로 만들어달라며 부탁을 한 것이다. 이연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마준을 만나 그 일기를 받은 날, 아내와 아이들을 잃었다. 그렇다. 하필 그날이었다.
이야기는 이연과 이무의 이야기가 차례로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그 오래된 일기에 의하면 이무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아마도) 조선의 고아였고, 그런 그를 그의 양아버지 헬무트가 발견해 그를 독일로 데려온다. 고향도 없이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이무는 꼭 자기처럼 연고도 없는 자들의 역사를, 그러니까 고고학을 전공했고, 그의 지도 교수, 프롬 교수와 함께 잊힌 도시, 하남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대 언어가 죽은 언어인 것처럼, 고대 도시도 죽은 도시와 같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그 도시를 기억하지 못하며, 그 도시 사람들마저 세대를 거치며 간간이 전해 들었을 뿐, 어떤 뿌리라고 할만한 것은 증명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시이다. 토박이면서 망명자일지도 모르는..
프롬 교수는 한때 아찔한 사이였던 테레지아의 오빠, 다니엘의 제안으로 연구여행을 감행하게 되는데, 허수경의 경이로운 상상력을 내가 감히 글로 옮기기란 불가능하므로 그 여정의 자세한 내막은 생략한다. 아무튼 이무는 자신이 왜 이 연구 여행을 따라가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스스로도 모른 채 동행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하남을 만난다. 이때 하남은 도시가 아니다. 이 여성, 이 노마드는 하남에서 태어났다 하여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하남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이무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의 간지럼을 경험하게 된다.
그 도저한 슬픔의 기록을 읽으며 나는 베르테르가 가졌던 슬픔을 가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을 잃는 순간, 이 세계의 모든 자연이 니스 칠이 된 거짓 그림처럼 보이는 순간을 경험했던 베르테르. 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으니까. 누구에게도 나를 내보이며 울 수 없었으니까. 하남을 처음 보던 순간 느꼈던 감정은 그래서 특별했고 더욱 불가사의했다.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있었으나 한 번도 찰랑거린 적 없다고 인정하지 않았던 물이 데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169-170쪽)
떠돌며 병들지 않던 자가 있던가. 어느 새벽, 누군가 이무의 방문을 두들긴다. 문을 여니 하남이 서 있는데, 그녀가 그에게 전한 이야기가 범상치 않다. 자신은 하남에 살았으며, 석공이었던 당시 남편이 도시가 사라지려고 할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위에 새겨 넣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바위에서부터 나왔다는 것. 그것이 하남이 전한 환상 같은 이야기였다. 하남은 노마드로 살면서 듣고 새기는 이야기들에 묻혀 급기야 자신이 그 이야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신비한 소설을 읽으며 후반부에서 진짜 하남이 병이 든 것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이것이 왜 거짓이라고만 할까? 생각했다. 진짜 그럴지도 모르잖아. 이무는 어쩌면 하남이라는 진짜 환상을 만난 걸지도 몰랐던 거니까. 이전까지 사랑이 그에게 일종의 환상이었던 것처럼.
나는 그가 하남에게 이끌린 것이 그녀가 본디 휘발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기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입양이 되었고, 친구가 있고, 일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뿌리가 없었다. 어딘가 주저앉아 살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끌려온 삶이었기에 결코 자신이 가닿은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오리엔트에 빠삭하고 미묘하게 아름다운.. 하물며 출처 모를 박하 향을 풍기는 그녀에게 어찌 끌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후 하남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 역시 노마드로써의 삶을 결심한 이무를 보면, 그를 위로하기엔 말 천마디도 부족했을 것이다.
하남을 잃고도 꿋꿋이 노마드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이무를 보며 이연은 파일 속에 아마 영원히 잠들어 있을지도 몰랐던 자신의 아내 인수의 시 「박하」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이야기의 시점이 전환될 때, 이연이 남자임에도 다분히 감상적이고 섬세한 사람이라는 점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 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것이 허수경 시인의 소설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했다. 이보다 여릴 수가 있나. 여자인 나보다 감상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아무튼. 이연의 이야기는 표면처럼 느껴졌고 이무의 기록이 내면처럼 느껴졌다. 유려한 액자식 구성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말이야 이연아, 우리야말로 우리 삶을 써 내려가는 고스트 라이터가 아닐까 싶어. 내 앞에 놓인 시간들은 오리지널인데 내가 사는 삶은 꼭 누군가를 흉내 내고 있는 것 같거든. 어릴 때부터 배운 거, 교육을 받으면서 머릿속에 박힌 거, 예술가들이 아름답다고 만든 것을 아름답게 보는 거. 슬픈 것도 그래.” (154쪽)
폰트 사이즈도 다른 책에 비해 한참이나 작아 오리엔트 스토리가 괜히 더 길게만 느껴지는 이 장편에서 기억에 남는 한 부분을 뽑으라면 이 장면을 뽑겠다. 형 마준이 이연에게 건네는 이 말이 내게는 꼭 이 소설을 관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마준의 이야기이기도, 이연의 이야기이기도, 하남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나는 소설이 문득 어떤 장면에서 통찰을 내보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장면이 그랬다. 우리는 우리가 삶의 주인이라 믿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 있다. 그 사회가 우리의 무의식을 건설하는데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오래돼서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렇게 한 줄로 놓고 보면 우울하지만, 실상 세상에 답이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소설가의 소설과 시인의 소설은 사뭇 다르다는 걸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어미라고 할만한 것들이 자주 생략되고, 선택된 낱말들은 훨씬 여리며, 묘사가 참으로도 곱다. 더욱이 허수경 시인이니, 그럴 수밖에. 시인은 작가의 말을 붙이며 이 소설을 씀으로써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어떤 욕망이 자신 안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이 고고학을 곁에 두고 일생 무덤을 파헤치며 언젠가는 이런 진짜에 가까운 가짜를 만들어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디선가 ‘욕망의 글쓰기’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떠오른다.
『박하』 출간 기념 북토크 中 시인의 말
— 상처 없는 세계는 없구나. 이 세계는 흔적을 더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며 살아가야 하는구나.
— 순간이 영원으로 잡히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우리가 아무리 그 순간을 지나오고 배반하고 살아도 그 순간 자체만은 머릿속에서 언제나 영원한 무엇으로 남는.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희망인 거죠. 그런 영원한 순간을 인간이 한 생에서 겪었다는 것.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