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영어 레벨 어느 정도일까?
나 때문에 영국으로 온 가족이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사실 아이들의 영어 교육은 주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이왕이면 영어를 잘 익히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둘째가 학교를 갈 수 있는 나이까지 어느 정도 기다리긴 했었지 그게 다였다. 그냥 아이들은 우리보다 쉽게 배우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다였고, 또 우리가 영원히 지낼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되는 만큼 배우고 오면 된다는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거의 배워 올 수 있는 최대치를 배워왔고(배웠다기 보다는 익혔고) 현재도 어느 정도 유지 중이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려고 한다.
가기 전
영국으로 떠날 당시(21년) 첫째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둘째는 어린이집 졸업반(한국나이 7세)이었다. 영어와 관련된 진지한 경험은 없는 편이었다. 아들은 학교 앞 공부방 같은 곳에서 파닉스를 조금 공부한 정도이고 둘째는 전혀 영어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으로 간다는 말을 들은 두 아이의 반응은 완전 정반대였는데...
아들: 와 그럼 마트(?)에서 손흥민 볼 수 있는 거야? (신남)
딸: (일단 눈물) ㅜㅜ 난 영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해?
아들: 괜찮아 학교 가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돼... 난 지금도 학교에서 아무 말 안 해 (뜬금 고백)
딱 이런 상태로 영국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사실 영어를 둘 다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고 보면 된다.
현지에서(첫 6개월)
현지에 도착하고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동네 꼬마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인사를 전했다. 그들도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하지만 아이들 입에서 Hello 하나 나오지 않고 웃기만 할 뿐...
자가격리가 끝나자 극 E 성향인 아들은 동네 아이들의 축구판에 뛰어든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축구는 꽤 하는 편이었던 아들은 그렇게 잘 적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둘째 날 울면서 집에 오는데...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ㅜㅜ" 동네 영어학원 다녀서 단어 몇 개 안다고 자기는 영어를 좀 한다고 생각했던 아들은 그렇게 처참하게 깨지고... 당분간 동네 아이들의 틈에서 축구만 할 뿐 입은 꾹 다무는 신세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7~8월, 그러다 9월부터 학교를 가게 되는데... 11월 12월이 되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현지 아이들과 대화할 때 짧고 간단한 영어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특히 아들은 닌텐도를 통해 당시 현지 아이들에게 유행했던 게임을 함께하면서 급격히 영어가 늘기 시작했다. 헤드폰을 쓰고 "Kill", "Help"와 같은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현지에서(6개월 이후~1.5년)
그렇게 영국생활이 6개월이 지날즈음, 두 아이는 서로와의 대화에서도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와이프와 나는 신기한 듯 그들이 막 영어 걸음마를 뗀 모습을 기특하게 보고 있었다. 이렇게 천천히 늘면 되겠다 싶은 그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서서히 늘거라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영어는 엄청난 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마치 지난 6개월간 마음속으로 영어실력을 쌓고 있다가 한 번에 터트리는 것처럼 발음, 표현, 문법 모든 게 완벽하게 완성되어 갔다. 나는 죽어라 해도 잘 안 되는 잉글랜드 북부 발음이 아이들에게 편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쭉, 아이들은 영국에 온 지 1년도 안되어 한국어 보다 영어를 더 편하게 쓰기 시작하고 우리에게도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간 아들과 달리 딸은 한글, 한국어 모두 어설퍼지는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 둘 다 스스로 한국어 보다 영어가 편하다고 했다.
돌아와서
그렇게 1.5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게 신기하게도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영어실력을 장착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는 이런 거 같다.
- 잉글랜드 북부 도시인 리즈엔 한국인이 거의 없다. (한글학교도 있지만 부지런히 가진 않았다)
- 아이들이 다닌 학교엔 한국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 대신 영국 현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많아서 다양성이 높아 영어를 못하는 두 아이도 꽤 포용적인 분위기에서 지냈다. (위축되지 않는 분위기 정말 중요!)
- 학교에서 오후 3시까지 영어로만 대화하는 환경. 학교를 마친 후에도 동네에서 친구들과 영어로만 대화하는 환경 속에 살았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에서 2년을 보내온 지인이 있다. 그 집도 두 아이 모두 캐나다 현지학교를 다녔는데 영어를 잘하게 됐지만 조금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물론 우리 아이들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인 듯) 환경의 차이가 커 보였는데 한국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 학교 같은 반에도 한국 아이들이 있고, 동네에도 한국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학교를 마치면 현지 아이들보다 한국 아이들과만 어울리다 보니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돌아온 지 2년이 되었다.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어떨까? 아쉽게도 영국 악센트는 이제 사라졌다. 대신 미국 악센트가 자리 잡았고 여전히 영어 콘텐츠를 즐기고 익숙하게 보고 듣는다. 두 아이들끼리는 여전히 영어로 대화한다. 초반엔 영어학원을 좀 다녔지만 둘 다 흥미를 잃고 이젠 다니지 않는다.
영어 시험을 쳐본 적이 없고 그 향으로 공부를 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아들이 학교에서 영어 시험을 얼마나 잘 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영어에 여전히 자신감은 있으니 이 감각을 잘 살려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