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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소통을 위한 상사의 실력

[제재소 다니는 직장인의 일상과 생각]

by 우드코디BJ
2030과 4050 식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원목 오브제의 형태를 의논하고 있다


작년 4월, 한 지자체가 공무원 임용후보자의 시보 해제를 기념해 나무 심기 행사를 개최했다. 시보 해제는 정식 공무원이 됐음을 의미한다. 새내기 공무원 53명은 직접 심은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을 달았다. 최근 젊은 공무원 퇴사가 크게 늘어 공무원이라는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행사였다고 한다. 이러한 취지가 밝혀지자 젊은 세대는 온라인상에서 싸늘한 반응을 보였고, 현실적 대안 없는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글이 잇따랐다. 공직사회 특유의 연공서열에 따른 상명하복과 수직적 조직문화가 빚어낸 촌극이라는 시각도 있다.


20231024_102858.jpg 2030, 4050, 6070 식구들이 함께 오브제로 사용될 원목을 켜고 있다


'겸양 도장'은 직급에 따라 결재란에 도장의 기울기를 달리해 도장을 찍는 일본 사회의 권위주의적 관행을 말한다. 예를 들면 계장은 90도, 과장은 45도, 부장은 30도로 가장 왼쪽의 책임자 결제란을 향해 도장들이 인사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일반인이 글을 올릴 수 있는 국내 온라인 사이트에도 이런 사례가 등장해 화제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결재란에 표기된 서명의 크기가 직급이 오를수록 커지는 수기문서 결재란을 캡처한 이미지가 올라왔다. 이 글에는 직급이 높을수록 서명 칸이 넓은 전자결재 화면을 캡처한 이미지가 댓글로 달리기도 했다. 결재란에 반영된 위계적 조직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31024_150057.jpg M(멋)Z(진) 세대 식구들이 켜낸 원목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국내 한 구인구직 회사에서 직장인 2,236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세대차이'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5.9%가 '세대차이를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다. 세대차이를 크게 느끼는 상황은 '조직에 대한 이해도'였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는 '일과 삶 분리, 조직 헌신에 대한 견해가 다를 때' 가장 갈등을 느낀다고 답했고, 비슷한 비율의 응답자가 '감정소모로 스트레스 증가'를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세대차이 극복을 위한 노력을 한다는 이들은 응답자의 절반도 되지 않았으며, 기업 내에서도 조직문화를 변경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놀랍게도 80.7%에 달했다.


20231024_150232.jpg 지게차 포크에 제재된 원목을 옮겨 본 경험 있는 대한민국 29세 청년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상명하복(上命下服)'은 상사가 명령하면 부하는 복종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이 꼽은 가장 이상적인 기업문화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평적 조직문화'로 나타났다. 실력이 좋은 가수나 연기파 배우를 두고 흔히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수평적 소통과 협업이 요구되는 시대에 필요한 직장 상사의 실력은 무엇일까. "시킨 대로 하라"나 "말대꾸하지 마라"라는 말로는 부하 직원을 떠나 그 누구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다. 우리 회사에는 무려 네 명의 MZ세대가 함께 근무 중이다. 감동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싫어도 해야 되는 일' 말고 '진짜로 해보고 싶은 경험'으로 업무를 풀어내 줄 '상사의 표현력'은 어때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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