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신용 위기로 읽는 돈의 흐름과 부채 불감증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바로 빠져나가는 돈이 있다. 4대 보험이 그렇고, 보험료가 그렇고, 퇴직연금과 적립식 투자금도 그렇다. 많은 사람은 그 돈이 빠져나가는 순간까지만 안다. 그다음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잘 모른다. 금융위기는 대개 바로 그 모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2007년 8월 프랑스의 BNP파리바가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과 연결된 펀드 3개의 환매를 멈췄을 때도 처음에는 멀고 복잡한 해외 금융뉴스처럼 보였다. 하지만 1년쯤 뒤 금융위기가 커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알게 됐다. 그 낯선 펀드 문제는 몇몇 투자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은행과 기업, 고용과 경기까지 이어진 균열이었다. 문제는 늘 그랬다. 모르는 사이에 연결돼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비슷한 불안이 번지는 곳이 사모신용이다. 이 말이 낯설다면 먼저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방식부터 생각해 보자. 은행은 우리가 맡긴 예금을 모아 기업에 대출한다. 금융감독원의 감시를 받고 대출 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예금자 보호법으로 1인당 5천만 원까지 보장된다. 사모신용은 다르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보험사, 대학 기금 같은 대규모 기관투자자의 돈을 모아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시장이다. 은행 창구를 거치지 않는다. 은행보다 규제가 훨씬 느슨하고 공개 공시도 적다. 예금처럼 법으로 보호받는 안전망도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이 감당하지 못하게 된 기업 대출의 빈자리를 이 시장이 메우기 시작했다. 2025년 기준 글로벌 사모신용 시장 규모는 약 2조 3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천조 원을 넘는다. 더는 변방의 시장이 아니다.
문제는 이 시장이 커졌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가 있다. 주식은 가격이 매일 공개된다. 기업이 채권을 발행할 때도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가격과 위험도가 실시간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사모신용은 다르다. 공개 시장을 거치지 않고 투자자와 기업이 직접 계약을 맺는다. 공시가 적다. 가격이 매일 공개되지 않는다. 손실이 생겨도 숫자로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안 보인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늦게 보이기 때문에 더 늦게 알아차리게 된다는 뜻이다.
보통 사모신용 펀드는 투자자들이 원할 때 일정한 환매 창구를 열어두어 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2025년 말 기준 운용 자산 3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440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대형 자산운용사 블루아울캐피털이 최근 자사 펀드 하나에서 이 환매 창구를 닫았다. 대신 펀드가 보유한 자산을 매각해 그 대금으로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유동성을 막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 해명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사모신용 펀드가 기업에 빌려준 돈은 만기가 길어 단기간에 회수하기 어렵다. 평상시에는 환매 요구가 분산되어 작동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 불안 심리가 퍼져 환매 요구가 한꺼번에 몰리면 출구가 좁아져 막히는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2008년에는 은행이 문제의 진원지였지만, 동시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통로 밖에서 위기가 자라고 있다. 완충장치 없이 충격이 말단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곧바로 제2의 2008년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닮은 점과 다른 점을 함께 봐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의 본질은 미국판 주택담보대출 붕괴였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줬고, 은행은 그 대출을 금융상품으로 쪼개 전 세계 금융기관에 팔았다. 집값이 떨어지자 대출 부실이 터졌고 그 상품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개인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다.
닮은 점은 이것이다. 위기가 보이지 않는 동안 낙관론이 커진다. 2007년 BNP파리바 환매 중단 당시에도 대부분은 일부 부실일 뿐이라고 봤다. 지금도 사모신용을 두고 은행이 아니니 2008년과는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다른 점은 이것이다. 2008년의 뇌관은 파생상품의 연쇄 폭발이었다. 지금의 뇌관은 비공개 시장, 느린 가치평가, 막힌 환매 구조다. 그때가 폭발이었다면 지금은 침수에 가깝다. 물은 먼저 차오르는데 소리가 나기 전까지 잘 모른다.
그렇다면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여기서 한 가지 개념을 짚어야 한다. 정부가 경기를 살리겠다며 시장에 돈을 푼다고 발표할 때 많은 사람은 생각한다. 내 살림도 좀 피려나. 그런데 그 기대는 대부분 빗나간다. 이유가 있다. 정부가 돈을 풀면 그 돈은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도달하지 않는다. 심장에서 피가 출발하면 대동맥을 먼저 지나고 모세혈관 끝에 닿는 데는 시간이 걸리듯, 돈이 흐르는 경로는 처음부터 제도로 정해져 있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은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하는 대형 은행과 금융기관이다. 그들은 물가가 오르기 전에 자산을 산다. 돈이 흘러 흘러 평범한 직장인에게 닿을 때쯤 자산 가격은 이미 올라 있고, 돈의 가치는 이미 희석돼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칸티용 효과(Cantillon Effect)라고 부른다. 이익은 먼저 도착한 쪽이 챙기고, 위험은 늦게 도착하는 쪽이 떠안는다. 사모신용 시장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수익은 먼저 구조를 설계한 거대 운용사와 기관투자자들이 가져간다. 그 시장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증발하는 것은 그들이 설계한 펀드에 투자한 보험사와 연기금의 자산이고, 자기도 모르게 그 상품에 가입된 평범한 개인의 돈이다.
그렇게 위험성이 높은데도 보험사나 연기금이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가 있다. 보험사는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려면 자산을 굴려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도 같은 이유로 움직인다. 그래서 국내 사모대출 펀드뿐 아니라 높은 수익률을 찾아 해외 사모펀드까지 물색하는 것이다. 국내 12개 증권사를 통해 팔린 해외 사모대출 펀드 잔액만 17조 원이 넘는다. 국민연금과 보험사 자금까지 합치면 38조 원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기관투자자의 손실은 보험 수익률과 연금 성과의 악화로 이어진다. 기관투자자들이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를 먼저 점유할수록,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투자처는 수익률이 낮고 위험도는 높은 곳으로 좁혀진다. 빚을 내서라도 수익을 따라가려는 2030 청년들의 무리한 투자도 그렇게 시작된다.
이런 '그림자 금융' 사례는 한국 역사에서도 낯설지 않다. 1972년 8월 3일 박정희 정부는 긴급명령을 내렸다. 아직 미성숙했던 제도권 은행이 기업 자금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명동 사채시장이라는 규제 바깥의 시장이 커졌고, 결국 연 40~50%에 달하는 고금리 사채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모든 기업의 사채를 강제로 동결했다. 사적 계약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무효화한 것이었다. 위기가 터지기 전에 국가가 먼저 개입한 사례다.
반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달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규제 바깥의 대출 위기가 터진 뒤에야 움직였다. 수백만 명이 집을 잃고 나서였다. 미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고 달러를 찍어 위기를 막았다. 대규모 구제금융이 투입됐고, 페니메이와 프레디맥 같은 주택금융기관을 정부 관리 아래 두고 부실화된 주택담보대출을 사들였다. 수익은 파이프라인 입구에 있던 자들이 챙겼고, 수습 비용은 위기를 만들지도 않은 국민과 후대가 나눠 떠안게 됐다.
지금 사모신용 시장은 규제 바깥에서 자라고 있다. 1972년처럼 터지기 전에 개입할 것인가, 2008년처럼 터진 뒤에 수습할 것인가.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위기가 깊어질 때 정부가 먼저 지키려는 것은 개별 펀드의 수익률이 아니다. 보험사와 연금, 은행처럼 돈이 실제로 돌고 막히는 통로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미국은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지금 사모신용 시장의 블루아울 사태를 보고 2008년 금융위기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는 시장이 알아서 정리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금융시장 붕괴를 막기 위한 정부 개입이 이뤄진다.
칸티용 효과는 돈이 풀릴 때만 작동하지 않는다. 위기를 수습할 때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수익은 앞단에서 사유화되고, 손실은 끝단에서 사회로 전가된다. 2008년이 그랬다. 금융기관이 만든 문제를 국민의 세금과 국채 발행으로 수습했다. 그 국채는 후대가 갚아야 할 부채다. 그 구조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민간 금융시장에서 생긴 부담은 결국 보험료 인상, 연금 수익률 하락, 세금 부담 증가라는 형태로 개인에게 돌아온다. 위기를 설계한 사람들은 이미 수익을 챙기고 떠난 뒤다. 남은 청구서는 구조를 가장 늦게 이해한 사람들 앞에 놓인다.
주식 차트와 부동산 시세만 보고 경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치기 쉽다. 코로나19 이후 상승장에서 처음 수익을 맛본 2030 청년들이 빚을 내 투자에 뛰어들었다. 처음 시작한 사람이 운 좋게 수익을 내면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것을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부른다. 그 착각이 게임 초보를 도박 중독자의 경로로 이끄는 주요 원인이다.
그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자산을 팔아도 대출을 갚기 힘든 고위험가구가 크게 늘었고, 그중 20~30대 청년층 비중은 더 크게 늘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를 거쳐 어디서 멈추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문제로 확대되는지 아는 일이다.
금융위기를 읽는 일은 공포를 조장하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 나의 삶이 어떤 사회 경제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위험은 늘 자신이 어떤 판에 앉아 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냉정하게 다가온다.
게임의 룰을 모르면 패를 잘 쥐어도 진다. 경제를 공부한다는 것은 투자 종목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경제라는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먼저 이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