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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Jan 08. 2021

'단절'에서 '접속'의 삶으로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허블) 수록소설 (6)

       


 엄마가 실종되었다.
그러니까, 죽어서야 실종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생전에도 지민은 엄마가 실종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너무 찾기 쉬운 사람이었다. 지민은 엄마가 죽기 전 몇 년 동안 다녔던 장소를 한 손에 모두 꼽을 수 있었다. 그랬던 엄마가 이제 와서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그 시점도 위치도 지금은 알 수 없다. 지민이 엄마를 찾아온 날은, 엄마가 이 도서관에 기록된 지 벌써 3년이 지난 후였으니까. (p.222~p.223)     

 

 죽은 엄마가 실종되었다니, 도서관이라니, 이게 다 무슨 얘기일까? 이 소설 속 배경은 죽은 자의 마인드를 업로딩해 도서관에 보관하는 시대다. 마인드는 한 사람의 일생에 이르는 정보의 모음으로, 수십조 개가 넘는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을 스캔하고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구현한다. 지민은 엄마가 죽은 지 3년 만에 엄마의 마인드를 만나러 갔으나, 엄마의 마인드가 ‘관내분실’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데이터가 삭제된 건 아니지만, 인덱스가 제거되어 마인드 검색이 불가능하다.      

 

 고인의 기억과 행동 패턴을 업로딩해 저장한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 생화학을 전공했다는 김초엽 작가는 전공 분야 외에도 풍부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의 서사를 튼튼하게 구축한다. 과학 지식과 상상력과 따뜻한 감성이 만나는 그녀의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녀의 가상세계 속에 좀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며칠 동안 「관내분실」의 가상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관내분실」은 슬프면서도 따뜻하고 현실적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소설들 중 가장 슬펐다. 그림자 같은 엄마의 삶, 여성으로서의 삶, 죽은 엄마와의 뒤늦은 화해, 이런 소재에 담담할 여성이 얼마나 될까.    

 

 임신 8주차의 지민은 임신 사실을 알고 엄마를 떠올렸다. 생전 엄마는 산후우울증으로 시작해 우울증이 깊었으나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방치했다. 엄마는 자식에게 지나치게 집착했고 엄마가 불행했으므로, 가족들 모두 불행했다. 엄마 사후 3년 동안 마인드 도서관을 찾지 않았던 지민은 왜 갑자기 엄마의 마인드를 찾으려고 했을까. 여자들은 엄마가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다. 지민도 그러했을 것이다. 엄마도 나처럼 이렇게 당황하고 겁이 났을까,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까……. 지민은 엄마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일평생 불행했다는 원죄의식이 지민을 괴롭혔다. 지민 자신도 엄마처럼 불행해질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의 불행했던 관계를 풀어야 자신의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지민이 엄마를 향한 감정은 원망과 미안함, 미움과 연민, 이렇게 상반되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으리라.


 엄마의 인덱스를 지운 이는 지민의 아버지였다. 엄마의 유언이었다. 관내분실된 엄마의 마인드를 찾기 위해서는 엄마에게 의미 있는 물건들이 필요하다. 지민은 엄마의 생전 물건들을 찾으며 엄마 고유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었고, 늘 집에만 있었던 엄마. 언제나 엄마는 엄마였을 뿐, ‘김은하’로서의 삶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살았던 삶은 죽어서도 최소한의 흔적만을 남겼다. 지민이 찾은 엄마의 유품은 가족사진과 아이들의 배내옷 정도였다. 그녀의 유품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누구의 엄마일 뿐, ‘김은하’로 살지 못한 그녀의 삶은 불행했다. 그녀는 그녀의 삶과 불행 모두를 존중받지 못했기에 더욱 불행했다. 그녀의 아픔이 이해받고 공감받고 위로받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의 사랑과 이해가 있었다면, 그녀의 삶이 그토록 처절한 고독 속에서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엄마로서의 삶이 아프고 아프다.     

 

 엄마의 정체성을 나타낼 유품을 찾지 못해 낙담한 지민에게 아버지는 엄마가 남긴 책 몇 권을 내민다. 그 책들 속에는 ‘김은하’라는 이름이 작게 씌어 있다. 엄마는 엄마가 되기 전, 책에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였다. 결국 지민은 그 책들을 가져가서 엄마의 마인드와 접속한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중략)
 “이제……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271)          

 

 살아서 이해받지 못했던 엄마는 딸의 이해와 연민에 이제 편안해졌을까? 소설 속에서 마인드는 영혼이 아니라는 게 학계의 다수 의견이라 했지만, 어쩌면 영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하의 불행은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이 그녀를 병들게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살아서 철저히 방치되었고, 남편의 이해를 받지 못했다. 죽어서도 단절되고 잊혀진 마인드였다. 지민이 엄마의 마인드를 찾아내고, 접속하는 행위로 인해 은하의 영혼은 치유받았으리라 믿는다.      


“만약 그때 엄마가 선택해야 했던 장소가 집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면. 표지 안쪽, 아니면 페이지의 가장 뒤쪽 작은 글씨, 그도 아니면 파일의 만든 사람 서명으로만 남는 작은 존재감으로라도.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그 깊은 바닥에서 다시 걸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그래도 엄마는 분실되었을까. ”(p.265)


 세상과 연결된 끈이 있었다면 엄마는 분실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민의 말은 작가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집이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둬두지 말라고,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끈을 놓지 말라고, 그래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분실하지 않는다고.


 그러고 보면 ‘관내분실’은 미래의 마인드 도서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삶을 살고 있지만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다면, 인덱스를 찾을 수 없는 ‘관내분실’인 것이다. ‘관내분실’되지 않도록 나의 흔적을 부지런히 남기면서 살아야겠다. 나를 규정하는 이름이,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내일 뿐이라면 서럽고 허무하다. 우린 '나'로 살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지, 누구의 '무엇'이 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사람이 역할로서의 자아만을 강요당할 때 '사람'의 생기를 잃어버린다. 들에 핀 들꽃들도 모두 제 이름이 있고, 제 향기가 있다. 내가 고유의 '나'로서 행복할 때, 내 소중한 이들도 그들 각자의 이름으로 행복한 삶을 산다.  '나'의 이름, '나'의 향기를 세상과 접속하며 살다가고 싶다. 이생에서도 '관내분실'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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