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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Jan 09. 2021

자유를 향한 용기-「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허블) 수록 소설 (7)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마지막 소설이다. 이 작품은 소설집에 수록하기 위해 새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일곱 편의 소설들 중 가장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소설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며 상황과 인물들에 빠져들었을 때 그 속에 녹아있는 주제를 숨은 그림 찾듯 건져내야 한다. 이 소설에선 비혼모 동양인 중년 여성을 우주 비행사로 설정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도를 넘는 비난, 그리고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문제제기와 주제의식이 너무 앞선 나머지, 서사의 촘촘함과 핍진성이 약한 듯하다.  물론 그런 아쉬움에도, 김초엽 작가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있어,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재경은 마흔여덟 살의 나이에 최초의 ‘터널’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다. 백인 남성 두 명과 함께 재경이 선발되자, 재경의 자격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이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재경이 인류를 대표하기에 불충분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재경이 인류의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여 우주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은 과소평가되면서 동시에 과대평가되었다. 그러나 재경은 우주로 가는 대신, 바다로 뛰어든다.     

 

 재경은 인류를 대표해 우주 저편으로 날아갈 세 명의 우주비행사 중 하나다. 사람들은 백인 남성이 인류를 대표하는 우주비행사로 뽑힌 것에 이의가 없으나, 동양인 여성, 그것도 중년의 비혼모 여성이 세 명 중 한 명인 것에 과도한 비난을 퍼붓는다. 유색인종, 중년, 비혼모, 여성. 우주비행사로는 도저히 뽑힐 것 같지 않은 조건을 재경이 모두 가지고 있다. 비주류에 가해지는 비난과 증오는 잔인하리만큼 지독하다. 동시에 ‘올해의 여성’에 뽑히고, 소외받는 여성의 대표가 되어 과한 추앙과 기대 또한 재경을 힘들게 했다. 비주류에 가해지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로, 재경이라는 인물이 탄생한 듯 보인다. 마흔여덟의 비혼모 여성도 우주비행사로 뽑힐 수 있다. 재경의 뛰어난 역량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재경이라는 인물 설정에서 작가의 노골적인 손가락이 느껴진다. 딸만 남겨두고 그렇게 홀연히 사라질 만큼의 절박한 무언가가 재경에게 있었나? 가족처럼 가까웠던 가윤네 모녀가 있긴 하지만 그 무렵엔 따로 살 때였다. 혈혈단신 살아갈 딸만 남겨두고 심해로 사라지는 재경의 선택이 썩 와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경은 우주 너머로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없었다. 재경은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신체를 개조하는 사이보그 그라인딩을 거치면서 신체의 자유에 매혹되었다. 그녀가 우주 대신 바다로 뛰어들어 자유롭게 유영하는 삶을 택하는 이야기가 신비롭고 매혹적이긴 하다. 그럼에도 재경이라는 인물이 살아있는 인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와닿지 않는 인물, 이해는 되지만 공감되지 않는 인물이다. 딸의 존재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를 찾아 홀연히 사라지는 엄마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그럼에도 김초엽의 다른 작품들이 사람과의 관계나 감정, 정서를 섬세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좀 아쉽다. 

 

 다소 비현실적 인물인 재경에 비해 가윤은 좀더 현실적이다. 가윤은 재경을 자신의 우주영웅으로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재경 이모라고 부르며 한 가족처럼 살았다. 가윤은 재경을 보며 우주비행사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재경의 뒤를 잇게 된다. 재경이 우주 대신, 바다로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재경이 바다로 뛰어든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심해를 유유자적 유영하는 재경 이모를 상상하는 것은 우주에 있는 이모를 상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쉬웠다. 심해로 내려간 재경 이모. 그건 너무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그려도 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이모는 새로 단 아가미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헤엄치겠지. 그러면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한심한 일들을 마음껏 비웃고 있을 것이다. 가윤은 그곳의 어둠이 우주와도 닮아 있으리라고, 그래서 이모는 망설임 없이 바닷속으로 떠났으리라고 생각해보았다. (p.313~p.314)


 가윤은 결국 힘든 과정을 거쳐 터널 너머의 우주를 본다. 그 우주를 보며 재경을 떠올린다. 이모가 말했던 것처럼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윤은 그래도 이 우주에 와야 했고, 우주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재경은 아니었다. 재경의 꿈은 우주에 있지 않았다. 심해 속에서 중력과 압력을 느끼지 못하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어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싶었을 재경을 가윤은 깊이 이해한다. 김초엽의 작품들에서 가장 큰 줄기인 ‘이해’가 이 작품에서도 핵심 정서로 자리잡고 있다. 이해. 서로 다른 존재, 다른 꿈을 가진 타자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건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서 임신한 딸이 죽은 엄마의 불행했던 삶을 이해하고, 외계인과 지구인이 서로를 이해하고 지켜주듯이, 이 소설에서도 우주 발사 전날 책임감을 훌훌 버리고 바다로 사라진 이모를 이해한다.      

 

 최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하여 터널 너머의 다른 우주로 확장한들, 어차피 이쪽 우주나 저쪽 우주나 별반 다를 것 없다는 묘사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더 멀리, 더 먼 우주로 우리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점 같은 작은 지구 안에서도 백인이냐 동양인이냐, 여성이냐 남성이냐로 나누고 편 가르고 소외시키는 게 인간들이다.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더 먼 우주로 뻗어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고 있다. 결국 이 소설도 자유를 찾아 떠나는 용기와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현실 속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먼 미래를 여행하고 돌아와 현재의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김초엽의 소설집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우주를 탐색하듯 내면을 탐색하는 기묘한 우주여행이었다. '나'라는 우주, '타자'라는 우주를 충분히 탐험하고 사랑해야, 더 먼 우주의 타자들과도 공생할 수 있다. 터널 너머 우주로 간 우주 영웅과 심해로 뛰어든 우주 영웅이 가만히 들려주는 또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너의 우주와 너의 심해로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러니 훌쩍 뛰어들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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