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알려준 삶의 지혜
취향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달라진다.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가 바뀌기도 하고 즐겨 입던 옷의 스타일도 변하기 마련이다. 특히 입맛은 정말 급변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크게 변화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고등어조림을 먹으면서 나는 두툼한 고등어 살점보다 양념이 깊게 밴 무를 훨씬 더 맛있게 먹었다. 불과 올여름까지만 해도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에 들어간 무를 거의 먹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변화다. 생선만 마구 집어먹자니 예의상 무 한 입 베어 먹던 내가 밥공기 위에 무를 쌓아놓고 먹는 게 엄마에게는 신기했나보다. 나를 보고 엄마는 ‘너도 이제 나이 참 많이 먹었구나.’ 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던졌다.
싱싱한 고등어에서 나온 고소한 기름맛과 매콤한 양념이 속깊이 밴 무는 정말 맛있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그 맛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생선 없이 무만 가지고 조림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빻아둔 마늘을 꺼내고 고춧가루와 후추 같은 갖은 양념들을 준비했다. 텃밭에서 직접 길러서 수확한 무는 칼로 썰자 사각거리는 소리를 시원하게 쏟아냈다. 마지막으로 깊은 풍미를 위해 냉장실에 있던 생강을 깨끗하게 씻어 잘게 썰어 넣었다. 기대감을 품고 정성들여 완성한 무 조림. 빨갛게 양념이 잘 베어든 무를 나는 한껏 베어 물었다. 그러나 맛은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적당히 매콤하고 간도 잘 맞았지만 감칠맛이라고 해야 할 뚜렷한 무언가가 빠져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구원투수로 불러 세웠다. 무 조림을 먹지도 않고 눈으로만 보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고등어 없이 무만 조려서 먹으면 무슨 맛이 나겠어.”고등어조림에 들어간 무는 고등어의 기름맛과 향이 베어 맛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양념을 잘 만들고 정성스럽게 조리하더라도 고등어 없이 무 하나만 가지고는 깊은 맛을 낼 수 없다는 말이었다. 고등어와 무라는 재료의 강점을 함께 살려 완성된 조림만 먹어본 나는 이 본질을 놓쳤다. 부랴부랴 냉장고에 남아있던 손질된 고등어를 꺼내는 나를 두고 엄마는 말했다.“그러니까 뭐든지 해봐야 알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요리든 뭐든.” 엄마의 말은 정확했다. 내 손으로 직접 고등어조림을 몇 번 만들어보았다면 나는 무 하나만 가지고 고등어조림 속의 무와 같은 맛을 낼 수 있겠다는 착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인간은 예상하고 또 상상한다. 재미있는 점은 짐작하고 예상하는 일 심지어 상상하는 것까지 모두 경험과 체험에 크게 영향을 받는 다는 사실이다. 직접 체험하며 경험치를 많이 쌓은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 적용 시킬 수 있는 설계도를 그릴 수 있다. 노련한 셰프가 처음 접한 음식을 맛보고 조리과정을 읽어내는 것은 이에 해당하는 경우다. 반대로 경험이 적은 사람은 간단한 스케치도 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예측과 상상이 빗나가는 실수가 발생한다. 결국 상상하는 힘도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의 산물이다.
고등어 없는 무 조림을 만들면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경험의 중요성이 가지는 의미를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깨달음은 이렇듯 일상에 널려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도 가치 있지도 않지만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할 때 아름다워 진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고등어조림만 먹었다면 몰랐을 경험의 가치. 고등어 없이 만든 무 조림의 밍밍함을 느끼고 나서야 직접 요리하는 일이 단순히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치를 쌓는 하나의 방법임을 알았다. 그리고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들면서 삶의 지혜를 발견해낸 엄마의 식견에 감탄하고 또 감동한다. 엄마는 정말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