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함이 간절해지는 겨울
크리스마스 같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기온이 영상을 기록한 크리스마스는 살면서 처음이었고 거기다 3일간의 연휴로 인해 도시를 빠져나간 사람들이 많은 탓인지 거리는 한산하기 까지 했다. 내리는 눈도 맹렬한 추위도 거리의 캐럴도 없는 모습을 어색하게 느낀 사람은 나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늦은 오후 카페에서 만난 친구는 “이렇게 분위기 안 나는 크리스마스는 처음이다.” 라는 말을 인사처럼 꺼냈다. 겨울치곤 유난히 따뜻한 날씨와 자주 내린 비 때문인지 나는 12월이 늦가을처럼 느껴지곤 했다. 정확하게는 11월이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12월의 오후는 늘 따뜻했고 햇살은 따가울 만큼 쏟아져 내려 한낮의 대기를 달궜다. 바람은 서늘함을 품고 있었지만 겉옷을 여미게 만들만큼 춥지 않았다. 가끔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공기가 탁한 날도 있었지만 12월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높고 푸른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거리의 가로수들이 달고 있던 나뭇잎도 사라지고 해는 5시면 저물어 낮보다 밤이 더 길게 이어졌지만 나는 아직까지 가을 속에 있는 듯 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래서 12월의 메인이벤트라고 불러야할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도 특유의 분위기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뒤늦게 새벽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해 오늘 아침에는 제법 눈이 많이 쌓여 오랜만에 겨울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보다 더 따뜻한 날씨가 될 거 라는 일기예보는 적중했고 금세 올라간 기온 덕에 하얗게 쌓인 눈이 녹은 자리에 아스팔트가 까맣게 드러나 있었다. 따뜻한 겨울이 싫은 것은 아니다. 얇은 니트에 코트 하나만 걸쳐도 추위를 크게 느끼지 않는 것은 좋다. 두텁게 쌓인 눈을 치우느라 골목을 빗자루로 쓸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도 좋다. 다만, 겨울다워야 할 때는 겨울다운 느낌이 한껏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대로 된 겨울의 이미지가 때때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계절이 품고 있는 이미지는 날씨를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차가운 겨울의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따뜻한 온기를 찾게 만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데 모여 긴 겨울밤을 지새우면서.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꼭 잡고 눈 오는 거리를 걸으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친근함과 같은 온기가 겨울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추위를 피해 들어간 카페와 술집에서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주고 즐거움을 배가시켜준 경험을 떠올려본다. 별 것 아닌 대화 속에 가만히 스며있는 편안함이 지친 마음에 위로를 더하는 온기가 된다.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니 이제 남은 12월 31일과 새해의 첫 날은 조금은 겨울다운 날씨면 좋겠다. 수도계량기가 터져나가고 도로가 꽁꽁 얼어붙는 혹한의 추위가 아니라 ‘아 제대로 겨울날씨네 오늘은 조금 따뜻하게 입어야겠다.’ 라는 느낌의 날씨. 새하얀 눈 내리는 밤 친구들과 모여 새해의 소망을 나누며 마시는 술이 입에 착 붙도록.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를 의지한 채 보신각의 종소리를 듣도록. 제대로 겨울다운 날씨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